[무등칼럼] 끝내 퇴근하지 못한 그들을 애도하며…

@류성훈 입력 2022.02.16. 15:16

2022년 새해 들어 광주와 전남 노동 현장에서 일하던 10명의 노동자가 아침 출근 후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들과 같은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아들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광주·전남지역 건설·산업 현장에서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붕괴·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지역사회는 참담함과 비통함에 잠겨있다.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건설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 대형붕괴 참사가 발생해 6명이 매몰돼 숨졌다. 지난해 6월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대형 콘크리트 덩어리가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덮쳐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지 7개월 만이다. 이 현장 역시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가 지어질 곳이었다.

붕괴된 화정아이파크 아파트는 분양 당시 평당 1천600만여원을 호가하는 분양가에도 최고 10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최고급 고층 아파트였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붕괴 참사 영상이나 사진을 본 시민들은 마치 재난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에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에 고층 아파트가 붕괴된 초유의 사태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아무리 비싸고 고급스러운 '1군 브랜드 아파트'라도 안전만큼은 보장받을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배웠을 것이다.

부실 공사와 불량자재 사용, 눈먼 감리 등 총체적 부실이 건설 현장 곳곳에 만연해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 판이다.

'제2의 학동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인재가 없어야 한다고 지역사회가, 온 나라가 들끓었던 것이 엊그제인데 노동 현장의 안일한 안전의식과 부실시공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던 셈이다.

사고 발생 한달여 만에 실종자 6명을 모두 수습, 이제 겨우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희생자들을 위한 조문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고 원인이 뭔지조차 모르는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화정아이파크 예비입주자들의 걱정과 불안도 극에 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 도심 한복판 건설 현장의 대형 참사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수 국가산단 산업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터졌다.

공교롭게도 붕괴사고 발생 딱 한달만이다. 이달 11일 여수산단 내 여천NCC에서 열교환기 점검작업 중 발생한 폭발사고로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여천NCC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를 제조·판매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NCC(나프타 분해 시설) 업체인데도, 위험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사고 역시 조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한 원인을 밝힐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인재(人災)의 정황이 짙다. 열교환기를 청소한 뒤 시험가동을 위해 압력을 높이던 중 1t짜리 금속뚜껑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가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가압 직업이 이뤄질 당시 사상자들은 모두 안전지대가 아닌 교환기 주위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뚜껑이 제대로 체결됐었는지, 작업 당시 노동자들이 머문 위치 및 안전수칙 여부 등에 따라 사고 원인은 달라질 것이다.

여수산단에서는 지난해 12월에도 화학물 제조사 이일산업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3명이 숨진 것을 비롯 최근 5년 동안 화재·폭발, 가스누출 등 61건에 달하는 사고가 발생해 30여명이 다치거나 숨졌다.

광주·전남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의 희생자가 대부분 하청업체 노동자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 '힘 없고 빽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의 희생물로 내몰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화정아이파크 사망자 6명과 여천NCC 사상자 8명 중 7명이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앞서 발생한 이일산업 폭발사고 희생자 3명도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이달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돼 대기업도 법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각 업계 경영 책임자는 책임지고 작업장 안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인력·장비·법과 제도 모두 뜯어고쳐 실질적인 현장 안전도를 높여야 한다. 현장 소장이나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의무를, 많은 기업에서 너무나 어렵게 시작하는 것처럼 보여 씁쓸하다.

노동 현장의 모든 사고를 100%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발생하는 인재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류성훈 디지털편집부국장 겸 취재2본부장

슬퍼요
1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