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미약하지만 이길 수 없는, 어리석지만 속일 수 없는 사람

@강동준 입력 2022.02.02. 14:03

DJ가 1971년 대선 당시 밤낮없는 초인적인 유세전을 치르면서 가슴에 품었던 수첩에 담긴 내용이다.

"민중은 언제나 분노했고 민중은 언제나 승자였다. 비록 한때 좌절은 있었지만 그것은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민(民)은 지약(至弱)하나 불가승자(不可勝者)는 민야(民也)요, 민(民)은 지우(至愚)이나 불가기자(不可欺者)는 민야(民也)다.(백성은 미약하나 백성을 이길 수는 없고, 백성은 어리석지만 백성을 속일 수는 없다)"

공화당은 약 2억원의 자금을 당시 인구 17만명의 소도시 목포에 쏟아부었다. 곳곳에서 술잔치가 벌어졌다. 공화당원들은 집집마다 돈을 뿌리고 다녔다. 그들은 여당을 지지하는 집에는 ○표, 중립은 △표, 야당을 지지하는 집에는 ×표를 한 후 배금조로 하여금 ○표에는 많이, △표에는 적게 돌리게 했다. 야당인 신민당 후보측에서는 이를 역이용했다. 그들이 다녀간 집을 밤에 찾아가 대문에 쓰인 ○표를 ×표로, ×표를 △표로, △표를 ○표로 바꿔 표시했다. 상대방 교란작전이다. 다음날 대소동이 벌어졌다. 밤새 기다리던 사람엔 돈이 안오고 엉뚱한 야당 지지자에게 돈이 뿌려졌다.

영화 '킹메이커' 엄창록을 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를 친구와 함께 보았다. 1970년 전후 10년동안 김대중 후보를 도운 선거 전략가 엄창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여서 궁금증을 더했다. 배우 이선균이 엄창록 모델인 서창대 역할을, 설경구가 신민당 대선후보 김대중 모델인 김운범 역할을 맡았다. 서창대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김운범은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정의가 바로 사회질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플라톤의 얘기도 나온다.

실제 '김대중 자서전'(2010.김대중)책에서는 조직참모 엄창록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붙는다."엄창록이 저들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간 것은 내게 큰 타격이었다. 참으로 아쉬웠다. 그는 선거의 귀재였다.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 때부터 나를 도왔고, 67년 목포선거에서 출중한 지략으로 행정력이 총동원된 관권선거를 무력화시켰다.…(중략)몸이 약했던 그는 결국 돈과 협박에 굴복했다. 그는 선거캠프를 떠나 잠적했고, 정보부원들이 홍콩으로 데려갔다는 설이 한동안 떠돌기도 했다.…"

또 다른 책, '영웅의 최후-김대중 평전'(1992.이태호)에는 엄창록이 당시 행동에 옮긴 구체적인 선거전략이 열거된다. 흑색선전의 예로 이런 식이다. '야당 운동원이 양담배를 물고 거드름을 피우며 여당 후보를 지지하라고 권유한다. 유권자에게는 값싼 담배를 피우라고 내민다 '. 선거운동의 원칙은 '집권당의 선거운동은 법을 어기는 범죄'로 규정한다.즉, 권력의 범죄적 선거방식을 깨야 한다는 식이다. 예로 이유제강(以柔制强.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제압한다)를 거론한다. 이같은 전술로 관권, 금권에 대응하지 않으면 야당은 정치적으로 살길이 없다고 강조한다. 조직관리의 방법도 남다르다. 10명의 조직원에게 각각 10명씩의 유권자 접촉을 지시할 때마다 반드시 유령 유권자를 한두명 끼워 내려보낸다. 제대로 뛴 조직원은 유령인을 상부에 보고하고, 놀다 돌아온 조직원은 '10명이나 만나느라 땀깨나 뺐다'고 으시댄다는 것이다.

3월 9일, 제20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역사의 시간을 5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지만, 영화 속 모습은 '뭣하나 바뀐게 없는'작금의 정치판과 흡사하다. 부정과, 불법과, 증언에 대한 조작과, 영호남 지역감정 조장까지. 영화의 전후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을 다시보자. 1963년 10월, 5대 대선에서 16만여표 차로 신승한 공화당 박정희는 1967년 5월, 6대 대선에서도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제 6대 국회에서 핵심을 찌르는 성명서와 파상적인 대정부 질의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김대중에게 보복할 기회를 1967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찾고자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대중을 낙선시켜라"고 중앙정보부, 내무부 등에 특별지시를 내린다. 공화당 후보는 진도 출신 김병삼이었지만, 목포 선거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싸움이나 다름 없었다. 박정희는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항구와 공항 정비, 공업단지 유치 등 개발계획을 쏟아냈다. 목포에 꿀단지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김대중 후보는 6천여표 차로 승리를 거둔다.

2022 선거의 해, 민심은 언제나 엄중

1971년 4·27대선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표 차이는 95만여표. 이는 DJ가 가장 뼈아프게 생각했던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장기집권의 서막이 된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70년 10월부터 71년 4월까지 근 6개월동안 1만6천300㎞를 달리며 연인원 364만명의 청중 앞에서 137회라는 초인적인, 전쟁같은 유세전을 치렀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영화 명대사처럼 '어떻게 이기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올해는 3·9대선과 6·1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한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이고, 전국 지방에서는 광역 및 기초단체장과 교육감, 지방의회 의원들을 뽑는다. 비호감 선거로 규정될 정도로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지만, DJ는 평소 입버릇처럼 "정치가 진흙탕 처럼 썩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실생활과 삶을 개선하는 것은 정치다"며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부탁했다.

DJ가 1971년 대선 당시 밤낮없는 초인적인 유세전을 치르면서 가슴에 품었던 수첩에 담긴 내용이다.

"민중은 언제나 분노했고 민중은 언제나 승자였다. 비록 한때 좌절은 있었지만 그것은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민(民)은 지약(至弱)하나 불가승자(不可勝者)는 민야(民也)요, 민(民)은 지우(至愚)이나 불가기자(不可欺者)는 민야(民也)다.(백성은 미약하나 백성을 이길 수는 없고, 백성은 어리석지만 백성을 속일 수는 없다)" 강동준(이사·마케팅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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