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왜 호남인가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대표 입력 2021.07.07. 14:30

'삼월 대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또다시 호남이 뜨고 있다. 이른바 상종가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동서고금의 명구가 소환되는가 하면 '호남은 어머니 같은 존재, 여권의 심장부, 정치적 뿌리' 등 온갖 미사여구가 뒤따른다. 여야 유력주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호남을 찾는 것만 봐도 '아 대선의 계절이구나'실감한다. 역대 대선에서 호남의 선택이 대권의 향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호남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이끌어 왔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번 대선은 여러 모로 관심을 끄는 대목이 많다. 가장 큰 관전포인트는 역시 정권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 여부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면 진보-보수세력의 10년 집권 주기설이 여전히 유효해진다. 민주정부 집권 4기의 국정개혁 작업도 속도를 낼 것이다. 반대로 국민의힘 등 야권이 집권하게 되면 5년 만의 정권교체다. 진영간의 피 말리는 싸움이 예고되는 지점이다.

이번 대선에 뛰어든 유력 대권후보들에게 의혹이나 흠결이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아야 하는 선거, 미래비전이나 정책 대결이 아닌 '의혹까기 선거'가 될 우려마저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첫 번째 대통령이 나올 것인지, 세대교체·세력교체가 실현될 것인지, 2030의 위력이 어디까지 일지 등도 주요 관심사다.

이 같은 여러 관전포인트 중에 '호남의 선택'이 자리하는 것은 그만큼 호남의 정치적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의심의 여지 없이, 역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예를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가장 압권이었던 게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당시 지지율 3%에 불과했던 노무현 후보가 광주에서 대이변을 일으켰다. 사상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제 광주 경선에서 37.9%라는 놀라운 득표로 대세론의 이인제(31.3%), 호남 출신의 한화갑(17.9%) 등을 물리쳤다. 이른바 노풍의 진원지다. 이후 파죽지세로 대선후보가 됐고 제16대 대통령의 영예까지 안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것도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벚꽃대선에서 승리한 뒤 안정적인 국정운영 지지도를 유지한 배경에도 촛불혁명의 동력과 함께 호남의 견고한 지지가 있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민주당 경선의 표밭을 분석하더라도 마찬가지다. 1차 예비경선은 권리당원 50%, 일반 여론조사 50%로 결정되는데, 호남의 권리당원 수가 33만여명으로 전체 80만여명의 42%에 육박한다. 광주가 4만6천여명, 전남 20만여명, 전북 8만5천여명 등이다. 본경선의 선거인단 모집도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호남에 집중됐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 수도권의 호남 출신 지지세력까지 감안하면 호남의 민심은 절대적이다. 최대 표밭이다. 민주당 대권주자들이 호남민심 잡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선을 야권으로 돌려, 국민의힘의 서진전략이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행보에서도 호남의 무게감이 감지된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국립5·18묘역에서 무릎사과를 하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예산·정책 챙기기에 나선 것도 호남에서 마의 10%벽을 넘어서기 위한 포석이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입당을 미루며 중도 확장에 나서는 저변에도 호남에서의 높은 지지가 한몫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선에서 호남의 선택은 필요충분 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요 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처럼 호남이 전략적 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선의 수혜를 충분히 입었느냐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호남에 선물을 주려고 해도 큰 그림을 그려오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던 부분에서 시사점을 찾는다. 선거에만 열중했지, 그 이후 호남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의 모든 구성원들이 깊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지자체와 정치권, 시민사회, 언론까지 한뜻이 돼서 호남의 미래발전 전략을 짜고 이를 각 후보들의 공약에 담아내는 게 큰 과제다.

지금 호남은 과거 대선처럼 확실한 표 쏠림현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낙연, 이재명, 정세균, 윤석열, 각 후보들에 대한 지지성향에 따라 고루 갈린다. 호남대망론과 정권재창출론 등이 혼재해 있는 것도 같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호남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도 큰 그림을 준비하자. 또다시 우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구길용 뉴시스광주전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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