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왜 '보랏빛'이었을까?…컬러 마케팅에 주목한다

@강동준 입력 2021.03.24. 14:15

"역사상 가장 고귀한 안료는 육식성 바다 우렁이로 만들어졌다."

레바논의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에 서식하는 연체동물 뿔고동에서 추출된 색,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 그 주인공. 이 색의 생산은 최소 3천500년 전부터 시작됐으며, 그리스 신화에 헤라클레스가 우렁이를 씹어 먹은 개의 입이 자주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티리언 퍼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바다 우렁이로는 염료 한방울도 만들 수 없어 30㎖를 생산하려면 25만 마리의 우렁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로마제국에서는 이 염료를 상위계층에게만 제공했고, 자주색 옷은 황제만이 입었으며 허가 받지 않은 사람이 소유했을 경우에는 재산과 지위, 목숨마저 잃는 극심한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퍼플 기원 3천500년 전 바다 우렁이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데이비드 콜즈.영진닷컴.2020)책에 담긴 내용이다. 이 신비의 색은 1204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제조법이 사라졌다가 1998년에 밝혀졌다고 하니 그 귀함과 고급스러움, 화려함에 더 눈길이 간다.

보라색의 영어 단어 퍼플(Purple)은 보통 파랑과 빨강 사이의 모든 색을 말하지만 미술 전문가들은 붉은기가 도는 보라색(red-violet), 즉 자주색을 부를 때에만 Purple이란 단어를 쓴다.

이런 귀한 색이 전라도 외딴 섬 신안 반월·박지도에서 그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섬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반월도, 엎어놓은 바가지를 닮았다고 해서 박지도다. 양쪽 섬의 관문인 퍼플교를 비롯해 마을 지붕과 창고 벽, 마스크와 꽃신, 앞치마와 커피잔, 도로와 이정표, 공중전화 박스 등 모두가 보라색이다. 퍼플섬은 2019년 28만명이 다녀갔고, 코로나 여파에도 지난해 8월 정식 개장 이후 9만명이 인증샷을 찍었다.

흥행에 힘입어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2022년 한국 대표 관광지 100선에 꼽혔다.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행안부의 '휴가철 가고싶은 섬', 여기에 CNN은 '사진작가들의 섬'으로, 폭스 뉴스는 핫토픽으로 퍼플섬을 조명했다.

근데 왜 보라색일까. '섬 전도사' 박우량 군수의 민원해결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흑산 장도주민들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 교체' 요구에 "이왕이면 유럽의 마을지붕처럼 색칠해 홍도,흑산도를 오가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색은 섬 곳곳에 자생하는 보라색 청도라지와 꿀풀 등에서 착안했고, 이어 주민들이 잡초를 뽑고 보라꽃을 심었다.

이 작은 기적의 행진이 이제 신안 전체 섬으로 번져 컬러 마케팅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도읍 선도는 노란 수선화의 섬으로, 도초도는 여름이면 아름다운 수국천국으로 변하고, 3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신안 증도의 작은 섬 병풍도는 9월이면 온통 맨드라미 꽃밭이 된다.

여기에 섬과 연결된 다양한 혁신정책도 돋보인다. '사계절 꽃피는 섬'이나 '1도1미술관', 섬의 자원을 디지털화하는 '섬 데이터댐 구축', 여객선 야간 운항금지의 철폐 등이다.

섬과 섬, 섬과 육지의 연결도 눈에 띈다. 2019년 압해와 암태를 잇는 천사대교(5800억 투입, 7.2㎞)에 이어 최근 임자도와 지도를 잇는 임자대교(1766억 투입, 5㎞)도 개통했다. 주말이면 섬과 다리 주변은 방문객들로 바글바글이다. 오는 29일에는 '소작쟁의'와 '300년 노둣길'의 아픈 스토리를 간직한 암태도와 추포도를 연결하는 추포대교도 개통 예정이다.

신안군은 이제 다양한 섬 정책과 독창적인 섬 마케팅 전략을 무기로 천혜의 바다 자원인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도전에 나서고 있다.

지방경영시대, 이젠 질감 고민할 때

신안 퍼플섬 전략은 분명 지자체든 기업이든 벤치마킹의 대상이고, '보랏빛 소(Purple Cow)가 온다'(세스 고딘.도서출판 재인.2004)를 떠올리게 한다. 지방행정도 갈수록 '지방경영시대'로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누런 소가 아니라 보랏빛 소일까?

항상 안전하고 따분한 전략은 위험한 전략이고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마케팅 전략서 답게 퍼플 카우의 중요 핵심은 리마커블(remarkable)로 통한다. 즉 얘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주목할 만한,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놀랄 만한으로 요약된다. '소'든 '섬'이든 Purple의 P는 마케팅 체크리스트로 보면 Product(제품), Pricing(가격), Promotion(촉진), Positioning(위치잡이), Publicity(선전), Packaging(포장) 등의 P 첫 글자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신안군이 오지, 외딴 섬이란 환경과 열악함을 극복한 것이 '탈색의 과정'이었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전략은 '채색의 과정'으로 여겨진다. 이제 색과 함께 존재하는 질감(내용)을 고민할 때라고 본다.

신안의 '퍼플 브랜드' 지방경영 전략과 선제적 혜안에 거듭 박수를 보낸다. 천사(1004개)섬을 둘러싼 그 기적의 채색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어디까지 이어질지 자못 궁금해진다.강동준(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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