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친절을 받은 기억이 없어요.'

@김동혁 용두중 교사 입력 2023.05.09. 10:22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매년 도덕 시간 도덕적 행동의 중요성 특히 일상생활에서 친절을 받은 경험을 기억하고 친절을 베푸는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설명하곤 한다. 헬퍼스 하이와 테레사 효과처럼 친절을 베푸는 과정 자체에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의 신체에서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혈압이 안정화되며, 면역력이 증가하는 등 건강이 증진되는 긍정적 효과들을 거둘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친절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이를 발표하는 활동을 할수록 부정적이고 불안한 상황 특히 고립감과 단절감, 외로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 번아웃과 무기력에 따른 우울증 상황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친절의 기억은 부정적 심리로 인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인지 해독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효과적인 행복 정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학생들은 친절의 가치와 효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감한다. 이어 자신이 일상에서 받았던 친절의 경험들을 찾아 떠올리고 육하원칙에 따라 최대한 섬세하고 풍부하게 서술하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같은 모둠원들과 함께 자신이 받았던 친절 경험을 나누며 친절을 받았던 당시 자신의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을 느꼈을 때의 몸 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해보는 활동을 한다. 이를 통해 친절이 주는 행복감 속에서 뭉치고 경직된 얼굴, 팔, 다리 근육의 이완을 느끼고, 짧고 빠르게 뛰던 심장과 호흡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신체 전반의 활동 에너지가 향상되며 감정이 고요하고 평온해지는 것을 체감한다.

나아가 몸과 마음의 충만한 안정감과 행복감을 만끽하며 가족, 친구, 이웃에게 이를 보내고 나누는 마음을 갖게 된다. 타인과 겪었던 갈등, 그 갈등으로 인해 받았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갈등을 역지사지의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는 힘을 얻게 되고, 상리공생의 해법을 찾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수업 도중 친절을 받은 적이 없다. 떠올리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다른 친구의 발표를 듣고 그대로 베껴서 작성하거나 발표하는 학생들도 예전에 비해 꽤 늘어났다. 친절을 받은 경험을 작성한 학생들 중에서도 상당 수 학생들은 친절을 받은 내용을 무미건조하게 한 두 줄 정도 사실 중심으로 서술한다. '00이 볼펜을 빌려줬다.' 이런 형태다. 그 도움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그 느낌을 받았을 때나 그 느낌을 다시금 떠올렸을 때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예전에 수업했던 학생들보다 지금 수업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더 어려워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심지어 수업 중 친절 경험하기 활동을 다른 모둠 친구들보다 일찍 끝내고 영어 단어나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들까지 더 많이 보인다. 이유를 물어보면 학원과제란다. 이걸 끝내지 못하면 학원 진도를 따라갈 수 없단다. 쉴 수 있는 시간도 없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수업 시간에도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몰래몰래 문제를 푼단다. 학생들이 풀고 있던 수학 문제를 보면 고등학교 수학 문제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원 숙제를 할 수밖에 없던 학생이 애처롭게 보인다.

학생들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 상황에서 불가피한 거리두기 정책 속에서 고립되었다. 친절을 받고 베풀었던 활동들을 찾아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는 경험을 갖기 힘들어졌다. 학교폭력은 증가하고, SNS상에 악성댓글, 혐오 사진 등 사이버폭력도 심각해지고 있다. 무기력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회정서학습보다도 입시 교육을 우선하고 있다. 심지어 시골 초등학생 대상 학원에서 초등 의대반을 만들었고, 고등학교 수준의 선행학습을 한다는 기사도 보인다. 우리 사회는 시민을 성장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경쟁기계를 만들고 있는가? 김동혁 용두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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