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수업으로 포인트 모아오면 해외연수의 혜택을 준다고요?

@박새별 광주과학고 교사 입력 2023.03.28. 17:17

광주시교육청이 교사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있다. '스스로 수업 인증제'라는 것인데, 교사들이 공개수업 등을 하면 영역별로 1회 당 몇 점을 적립해주어 연간 총100점 이상을 모아야 하고, 이 포인트를 차곡차곡 잘 모으면 해외연수 선발시 우대하는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이다.

교사의 일상적인 수업은 절대로 적립대상이 아니고, '공문'으로 횟수가 남는 '행사성 수업'에 관해서만 포인트를 준다고 한다. 공개수업을 하거나 참관할 때는 학교 관리자에게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고, 1년 동안 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은 이 '도장판'을 교육청에 또 제출해야 한다. 교육청은 앉은 자리에서 도장판만 모으면 되고, 연말에 통계를 내서 이렇게 우리가 교사들에게 수업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고 보도자료만 내면 이것은 그들의 수업공개 성과가 된다.

시교육청 관료들은 교사를 대체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가? 초등 저학년 학생들에게 기본 습관 형성을 위해 칭찬 도장판을 운영하는 걸 보고, 교사도 그렇게 다루면 잘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나보다. 해외연수를 최종 경품으로 내걸면 교사들이 열심히 도장을 채워서 제출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육청 관료들에게 일개 교사들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업이란 것은 교실 안에서 1년이란 시간 이상을 두고 학생과 교사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소중한 교육활동이 아니다. 수업나눔 1회에 포인트 10점짜리라고 교육청이 정해주었다.

이 공문이 도착했을 때, 광주시교육청은 전국의 교사들에게 핫이슈가 되었다. 교사의 일상적인 기본 업무, 그리고 존재 이유이자 자부심의 원천인 '수업'을 갖고 관리자한테 도장을 받아서 도장판을 만드라는 것도 충격적인데, 교육청도 참여율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지 몇 년 이상 포인트를 적립하면 '해외연수'를 보내주겠다는 경품을 내 걸은 것이 너무나 황당하여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해서 유명해진 것이다. "오케이 캐시백 아니냐", "짜장면 10회에 탕수육 1회 쿠폰이냐"등의 교사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들이 들린다. 광주 교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초등교사 91%, 중등교사 88%가 신청할 의향이 없으며, 초등 89%, 중등 88%가 수업인증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시교육청은 이 수업포인트 인증제가 자랑스러운지 전국 최초 도입이라며 언론에 열띤 홍보를 하고 있다.

기존 보여주기식 장학 및 수업협의회가 문제점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이미 수많은 연구와 세월이 증명한다. 관 주도의 강제적 수업공개, 교사의 자율성이 무시되는 경직된 수업공개, 교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형식적 수업공개, 일상적 수업이 아닌 보여주기식 공개수업, 장기적인 변화와 성찰이 없는 이벤트. 대체 학생을 위한 것인가? 반짝반짝 잘 닦아놓은 교실에 외부인을 모셔다놓고 미리 정해놓은 학생들이 준비된 발표를 매끄럽게 하는 수업공개를 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폐혜가 있었는가? 그런데 이런 구시대적인 수업공개를 다시 활성화하겠다며 교사들더러 참여 인증 도장을 모아오라는 것이 2023년의 광주시교육청이다.

어쩌다 광주시교육청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의 광주광역시의 수업나눔운동은 광주교육의 가장 우수한 업적이자 기념비적인 정책이였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수업나눔을 장려하여 교사들로부터 각광을 받았고, 보여주기식 수업공개에서 협력적이고 실질적인 수업나눔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의 수업나눔운동은 정부 우수사례로 선정되어 타시도 교육청에서도 전국적으로 도입하게 된 제도였다. 교육감만 바뀌었을 뿐인데, 교원수업나눔운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전문적 학습공동체 활동을 통해 수업나눔과 연구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인 광주교육공동체의 날도 사실상 폐지되었다. 그리고서 등장한 것이 이 수업포인트이다.

수업 포인트 적립제를 어떻게 포장하든, (희박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어떻게 가르칠지 동료교사와 협력하며 머리를 맞대는 수업 나눔이 아니라 해외연수 보상을 위해 보여주기식 수업에 많이 다녔다는 증거밖에 더 되는가?

변화하는 시대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혁신이 일어난다. 2015년 태동한 수업나눔이 바로 혁신이었다. 이 혁신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가? 전임교육감도 아니고 그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도 아니다. 이것은 수업나눔에 참여해온 광주의 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이다. 교육청은 더 이상 수업의 가치를 훼손하지 말라. 박새별 광주과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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