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년 경력의 선생님이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왜 그 시절엔 그렇게 교사를 했나 몰라.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 것에 목숨을 걸었어. 그 제자들에게 미안해.' 나의 부모님 때 고등학생들은 공부에 방해되는 요소를 차단한다며 남학생들은 까까머리를 하고, 한 반에 몇 십명씩 앉아, 성적이 떨어졌다고 맞아가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나의 세대도 마찬가지로, 공부에 반대되는 요소를 차단한다며 여자반과 남자반 사이에 교무실을 놓고 통행도 못하게 하며, 남자는 스포츠머리, 여자는 귀밑 2센치를 규정으로 놓고 아침 7시에 등교해서 밤 11시까지 야자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오는 일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게 산 우리들이 공부를 잘했고 성공했나? 그렇게 공부한 기성세대의 지식은 지금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 아무 필요도, 효과도 없는 무식한 방법에 '공부시킨다'는 명분을 붙여 온 학교가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고 학생과 교사 모두 소진되었다.
'야,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하는 거다! 그리고 사당오락이야.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라는 말을 2023년의 학생들에게 한다면 우리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폭소가 먼저 터지고 비웃음이 이어질 것이다. 저 오래되고 시금털털한 말들은 21세기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가상현실을 누비는 아이들에게는 웃음이나 나오는 라떼 타령인 것이다.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면 전 세계가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있어야지 왜 토론수업, 프로젝트 수업, 인공지능 활용 수업, 에듀테크 활용 수업 등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등록금이 수천만원에 달한다는 외국계 국제학교들도 그 비싼 돈을 받고 이런 수업을 하고 있다. 즉, 엉덩이 붙이고 시간만 오래 끄는 공부법은 변화된 세상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지식을 구성하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효과도 없고, 더 이상 적용도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라떼는 말이야'의 추억에 잠기며 그 시절 방식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세상이 바뀐 걸 모른다. 둘째, 세상이 바뀐 걸 알고 있지만 내가 고생한 걸 너희들도 겪어야 세상 이치를 아는 거라고 착각한다. 셋째, 지금 세대의 자유로워 보이는 방식은 못마땅하고 하여간 예전의 절도있고 규율있는 풍경이 그립다. 넷째, 세상이 바뀌든 안 바뀌든 관심 없고 윗분이 예전 방식이 좋다고 하니 따를 뿐이다.
놀랍게도 미래교육을 추진한다는 광주광역시교육청에 위 네 가지 특징이 모두 해당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22년까지 시교육청에서는 '정규교육과정 외 교육활동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상한선과 기준을 정해왔다. 보충, 야자는 정규교육과정이 아님에도 선택이 아닌 강제로 운영해왔고, 학교 간 무한경쟁까지 일어났었다.
따라서 교육청 차원에서 일종의 지침으로 학생의 선택권을 부여하고, 학생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이 계획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교육청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 '지식과 경쟁 중심 교육에서 자기주도적 창의학습, 미래핵심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지침이였다.
그런데 시교육청이 2023년부터 '정규교육과정 외 교육활동 기본계획'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교육청은 학교가 라떼 엉덩이공부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야자와 보충 운영 방식을 '학교장 자율'로 하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붙일 것이다. '학교장 자율'은 절대 자율이 아니다. 인근 학교들이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자며 옆 학교 눈치보기 급급하게 될 것이다. 학교들끼리는 누가 누가 더 오래 잡아두나 눈치보게 되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 사립과 공립이 서로를 눈치 보며 누구든지 더 오래 야자를 시키게 만들 것이다. 보충수업, 야자를 신청하지 않는 학생들을 담임들보고 설득하든지 협박하든지 해서 더 많이 많이 학교에 오래오래 잡아두려 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서 그 시절 엉덩이 공부법이 학생들에게 큰 효과도 없고, 입시가 예전처럼 수능점수만으로 하는 게 아닌 줄도 알지만, 라떼 그 시절로 역행하기를 교육청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저 어른들 보기에 흡족한 옛날 옛적 학교 풍경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
한번 바뀐 물길은 다시 돌릴 수 없는 법이다. 그 시절처럼 학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 밤늦게까지 공부하라고 하면, 지금의 아이들이 그 방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스스로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자신의 언어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2023년의 학습자들이 '엉덩이 공부법'에 얼마나 동의할까? 라떼 리필은 이제 그만 할 때다. 박새별 광주과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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