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나한테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주는 건 다름 아닌 가뭄 재난 문자.
그래서인지 처음 눈이 쌓인 날, 14일은 기분이 좋았다. 눈이라도 와서 동복댐의 물이 좀 찼단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눈놀이를 할 생각에 선생님인 나도 준비물을 챙겼다. 아이들이 눈을 한껏 던져도 난 모두 막아내리라…! 비옷, 장화, 장갑에 고무장갑까지! 이만하면 천하무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오리를 한가득 만들어서 오리떼를 놀이터에 전시했다. 땀이 날 정도로 모든 눈싸움을 신나게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아이들과 눈에서 뒹굴었다. 이렇게 쌓인 눈을 다시는 못 볼 것처럼.
그런데 착각이었다. 하늘은 크리스마스를 정말 하얗게 만들 생각인지 눈이 또 내렸다. 하루, 이틀, 눈이 재난처럼 내렸다. 그러자 눈싸움의 즐거움은 뒤로한 채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먼저 아파트 지하 주차장 눈치싸움이 서막이다. 아. 눈 오면 마냥 좋지 않고 걱정하던 어른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왜 그랬는지 한순간에 어른이 된 기분이다. 내일 출근은 해야 하기에, 모두 이동 수단을 지키려고 지하 주차장은 순식간에 만원이 되었다. 차를 댈 수 있는 지정되지 않은 빈 곳이면 차를 어쩜 그리 잘 넣는지! 잠깐 장을 보러 차를 뺀 순간, 내 자리는 없다. 다들 출근의 노예라는 것이 실감 났다.
직장인이 주차장 눈치싸움이 끝이라면, 이제 학교는 다른 눈치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특명! 교육청이 알아서 하라는 시정조정을 학교가 책임 안 지고 넘어가는 방법을 찾아라! (ft. 우리 학교만 튀면 교육청에 찍힌다) 눈이 하루 내리고 이후도 많이 내릴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 첫날 시정을 조정하는 것을 학교에 맡긴 교육청 덕분에 시정만 조정하게 되었다. 그래. 첫날은 어찌어찌 출근하고 퇴근했다. 물론! 교직원들은 정상 출근이었다. 아이들도 나왔다. 덜덜덜 떨면서 미끄러운 길을 겨우 중심 잡아 온 아이들은 눈싸움을 더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은 대설을 예고했기에 출퇴근하는 교직원뿐 아니라 아이들은 어떻게 올까? 싶었다. 눈은 더 많이 왔는데 겨우 저녁에 시정을 늦춘 학교의 결정만 내려졌을 뿐이었다. 태풍에는 뜬금없이 원격수업으로 돌렸던 교육청이 이렇게 차도, 사람도 다니기 힘든 큰 눈에는 아이들의 안전을 학교장이 알아서! 학교장재량권으로 눈치싸움을 시킨 것이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서야 몇몇 학교에서 원격수업으로 급하게 돌리는 현상이 되어버렸다. 왜냐? 정말 안 되겠거든. 대중교통마저 마비되는 상황에 학교 가는 것이 생존을 건 사투가 됐거든. 그마저 원격으로 안 돌린 학교들 덕에 학부모도 멘붕, 교직원도 멘붕, 아이들도 멘붕이 되었다. 눈 속을 헤엄쳐서 겨우 학교에 걸어왔을 때 학교는 멘붕상태였다. 어찌어찌 출근한 교사들이 아이들 걷는 길을 모두 나서서 만들기 시작했다. 학교의 삽과 빗자루, 쓰레받기를 모두 동원해도 모자라다. 그래도 눈은 또 쌓여서 미끄러지는 아이들을 보며 위태위태한 마음에 교문에서 아이들을 잡고 들어갔다.
이제 끝일까? 퇴근 눈치 싸움을 시작하자. 눈이 더 쌓이고 쌓여 아침에 교직원이 타고 온 차는 눈에 파묻혔고 나이 어린 유치원 아이들도 집에 못 가는 것이냐고, 어떻게 하냐고 동공이 흔들리고 우는 아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결석을 선택한 아이들도 상당했다. 이러니저러니 교육활동이 가능할 턱이 있나. 선생님도 집에 못 갈 것이 걱정된단다. 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불안해하겠지? 일단 아이들부터 안전하게 귀가시켜야 한다. 한 명 한 명 어두워지기 전에, 더 교통이 마비되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시라는 연락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님도 신발을 비닐봉지로 묶고 차를 버리고는 만신창이 모습이었다.
교육청이 잘 판단해서 학교에 지시를 내렸다면, 학교장들이 자신들의 소신껏 안전한 방법을 빨리 선택했다면. 눈치 싸움할 일이 없었다면! 제발 좀! 성가신 일에 학교장재량권이라는 맘 편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안전에 관한 일에 책임자들이 책임을 안 지려는 비겁한 행동을 멈췄으면 한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에 눈치싸움 그만하자. 그러려면 모든 권한과 권리를 포기하고 넘겨주지?! 라는 생각이 그만 들도록 했으면 좋겠다. 교육청과 학교가 아이들이 신나는 눈싸움이 가능하게 해야지 자기들 눈치싸움만 하니, 오늘 아이들만 된통 눈에 파묻혀서 힘들었다. 김샛별 광주용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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