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인생 2회차는 없다

@조선중 월곡중학교 교사 입력 2022.12.20. 13:20

한 방송에서 최근 방영되고 있는 인생 2회차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는 재벌 일가의 일원으로 회귀한 주인공이 현생의 기억을 가지고 성공하여, 복수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비단 이 드라마뿐만 아니라 여러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의 소재로 심심치 않게 나오고, 그 횟수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성공하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농담이 젊은층 사이에선 유행어처럼 들린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런 말들이 왜 공감을 받을까? 현실은 아무래도 성공의 기반이 개인의 노력보단 그 밖의 사회적 여건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주의적 사고가 만연해 있고, 자본주의와 경쟁, 능력주의에 대해 깊게 내면화 되어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실패는, 혹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오로지 개인의 탓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혹자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극악의 계층 간 격차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현재 상위 20%의 부와 하위 20%의 부의 격차가 무려 74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근거를 가지고 말이다. 굳이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상대적 불평등에 대한 체감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높은 체감도에 비해 불만도는 이상하리만큼 낮다.

왜 그럴까? 단지 자신의 실패를 사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유교적, 사회·심리적 관념 때문일까? 물론 일제강점기, 6·25, 분단 상황, 급속한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 등 우리나라만의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나타난 현상일 수 있지만 교단칼럼이니 교육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생각해 보자. 수능 시험의 결과가 발표되고, 여기저기서 환호와 탄식이 섞여 나온다. 입시는 다양해졌고, 예전만큼 수능의 영향력이 높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대입에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입시는 학벌과 연계되고, 학벌은 직업과 계층으로 연계되어 오늘날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입시에 유리한 것은 개인의 노력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과, 동시에 이것은 세대를 이어 무한 경쟁의 덫으로 남아 계층 간 격차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사실도 모두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잘 바뀌지 않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경쟁은 필요악이다. 이번 월드컵만 보더라도 프로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선수들이 받은 연봉 합계로 순위가 결정된다면 당연히(보는 재미도 없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16강은, 모로코의 4강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이것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그래서 '공정한 경쟁'은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거대한 착시현상일 수 있다. 극소수의 성공 사례가 대다수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교육도 그렇다. 초·중·고 12년간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까? 어쩌면 스포츠의 그것처럼 개인의 노력과 성취의 과정을 매우 부드럽고, 드라마틱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운동장이 이만큼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은 뒤로한 채, 경쟁과 서열만 존재하는 구조이니 성공하려면 '노오력'하라는 말만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진 않은 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무한 경쟁의 덫에서 벗어나 협력과 본질적인 배움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많다. 하지만 개개 학생들은 종국에는 입시라는 현실에 맥없이 무너지고, 그러한 협력의 기억조차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씁쓸하기만 하다. 구조적 모순에 대해 저항하는 힘보다는 무조건 '공정'만을 부르짖는 '능력주의'의 늪으로 다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정말 다시 태어난다면 세상을 바꾸거나 성공할 수 있을까? 위대해 질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미래를 확실히 알고 움직이는 누군가의 행동조차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뜻 완전히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사회 구조를 혁명과 같은 방식으로 당장 모두 뒤집어엎을 수도 없다. 하지만 구조적 한계는 인정하더라도, 적어도 최소한 개개인은 그러한 사회 구조에 의해 모든 게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알게 하는 게 교육 아닐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자유 의지를 가진 주체라는 사실만이라도 명확히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말이다. 다음 생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내년, 내일은 있다. 최소한 무기력하게 경쟁의 늪에 빠지는 청년은 되지 않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선중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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