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저녁이 있는 삶

@정석 치평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2.06.21. 13:31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에서 볼 수 없는 풍경 중의 하나가 우유 급식이다.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진 상황에서 2학기 우유급식 실시 여부를 학교는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우유를 꼭 마셔야 하는 걸까?

예전에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에 부족한 칼슘과 단백질 섭취를 위해 학교에서 우유 급식을 권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 급식이 활성화되어 있고 이를 통해 하루에 필요한 영양분 섭취가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빵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우유성분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 완전식품으로 알려져 있던 우유에 대한 신화도 깨져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교에서의 우유 급식을 희망한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우유를 집에서는 먹이는 게 힘들다며, 학교에 우유 급식을 신청한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우유를 먹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쓰게 된다. 우유팩에 번호를 써 놓고 점검하거나 수업 시작 전에 함께 우유를 마시기를 권하는 방법 등을 통해 마시지 않는 우유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가방 안에서, 책상 속이나 사물함, 또는 화단 뒤에서 썩고 있는 우유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먹고 싶지 않은 학생들에게 우유 신청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지만 엄마가 강제로 신청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부모님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편식을 지도해 달라는 것이다. 골고루 균형있는 영양 섭취를 위해 편식을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집에서 안되는 것이 학교라고 쉽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먹기 싫은 음식을 급식실 바닥 아래 버리거나 화장실에서 가서 뱉는 아이도 생기게 마련이고 아이들과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학교 교육과정 계획에 반영하기 위해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물어보면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비중이 가장 많다. 바른 언어 습관이나 건전한 교우 관계를 위해 학교가 좀 더 나서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학교는 친구 간에 단순한 싸움도, 말다툼도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되는 순간부터 교육기관으로서가 아니라 매뉴얼에 움직이는 준 사법행정기관으로 내몰린다.

현재의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보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더 강요받고 있다.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학교 등 예전에 없었던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이다.

지난 대선이나 이번 교육감 선거를 지켜보면서 돌봄교실을 7시까지 확대한다거나, 방학 중에도 급식을 실시한다는 공약이 있었다. 다수의 투표권자인 학부모의 요구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쉬움도 컸다. 예전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외쳤던 대통령 후보가 있었다. 후보를 잘 알지 못하지만 구호 하나만큼은 가슴을 진하게 감동시켰다.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저녁을 보장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복지정책이자 교육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온종일 내내 학교에서 7시까지 지내는 것보다 하교 후에 부모님의 품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생활교육이자 인성교육이 된다.

아이들이 가장 크게 성장하는 것도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함께 할 때이다. 내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함께 키우자는 것이 앞으로의 미래교육의 방향이 될 것이다. 그 전 단계로 아이를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소통하고 배려받는다면 훨씬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 커가는 마음을 갖게 되리라 확신한다. 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의 방향이 이것을 중심에 놓아야 할 터인데 어느 대통령 후보나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0여년 전에 핀란드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학교의 여러 교육활동이나 교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감명받은 것은 6시 이후에 거리의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 모습이었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고, 또 그럴 수 있게 하는 사회 문화적 배경이 부러웠다.

이제 우리도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회 문화적 역량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변화에 적응하고 선도해나갈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교육정책이다. AI교육이나 디지털 교육보다 훨씬 중요한 미래 교육이다. 정석 치평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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