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강산이 변하는 동안 교실에서 알게 된 '실력'의 진정한 의미는

@박새별 광주과학고 교사 입력 2022.05.31. 10:46

중학교에 근무하다 고교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되었다. 고교로 왔을 때, 나는 '실력'을 올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실력'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은 없었다. 하여간 '실력'이라고 불리는 것을 키우면 제 몫을 잘하는 선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교사로 접한 고교 풍경은 학생이었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7시 30분까지 교실에 앉아 0교시를 시작하고, 그나마 숨통 틔워줄 점심시간 1시간 중 20분은 소화도 못 시키고 앉아 전교생이 쥐죽은 듯이 조용히 영어듣기를 했으며, 야간자율학습은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밤 10시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 입장이 되어보니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분기마다 반별 야자 현황을 보고해야 했다. 야자인원은 학급관리를 잘하는 담임능력으로 치환되었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반에 '1등급' 학생이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에 1등급이 몇 명이나 나왔는지 '반성회'에서 '반성과 다짐'을 정리하여 윗분들께 보고를 올려야 했다.

수업내용은 주로 '부교재'라 불리는 '문제집 풀이'였고, 수행평가는 엄청난 양의 문제풀이를 숙제로 내주고 검사하는 형태였다.(그래야 야자시간에 할 일이 많아 애들을 잡아두니) 시험은 반드시 1등급을 잘 변별하는, 전교 1,2등도 맞을까 말까 하는 '킬러문항'을 잘 출제해야 했다. 교사는 '어떻게 줄을 잘 세울까'에, 학생은 '어떻게 남보다 더 앞 등수를 쟁취할까' 모든 역량과 영광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게으른 교사고, 실력없는 학교였다.

갈수록 이 모든 현상이 물음표가 되었다. 상대평가에선 전부 다 1등급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고, 상위 4%에 해당하는 1등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 속에서 나머지 96%는 어쩌라는 말인가? 정해진 개수의 1등급을 쟁취하지 못하면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인가? 진로와 상관없는 수능주요과목 1등급이 모든 학생의 일률적인 목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가? 상위 4% 1등급 학생들은 어떤가? 지식을 배우는 즐거움을 알며 공부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문제를 맞아야 하니까, 등수를 유지해야 하니까 하는 공부일까? 내가 가르치는 것이 지식인가, 문제 잘 맞춰 등수 올리는 비법인가?

물음표가 너무 많아 어지러울 지경이였다. 그런데 점점 학교가 바뀌기 시작했다. '문·이과 구별하고 점수표에 맞춰서 가라'는 식의 진로지도는 학생 개개인이 희망하는 전공에 맞춰서 1학년 때부터 맞춤형으로 바뀌었다. 오직 1등급! 국영수사과! 만을 외치던 학습 상담은 향상의 정도, 즉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어떤 노력을 통해 학생이 성장하였는지에 대한 '과정'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과정형 평가가 도입되면서 수업 중에 발표, 토론, 프로젝트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바뀌게 되었다. 생기부는 수업 시간에 관찰한 내용만을 개인별 특성에 맞게 기록하여야 하니 교사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문제풀이 100% 수업은 학생에게도 손해이다. 아이들은 자기주도적으로 찾고, 사고하고, 공유하는 지식탐구 역량을 자연스럽게 키우게 되었다. 교사는 학생과 상호작용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즉, 수능 1등급이 '실력'인 줄 알았던 착각이 깨지게 된 것이다. 1년에 수천만원의 학비가 든다는 국제학교에서도 하고 있다는 수업이 이런 수업이고, OECD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수업방식도 이런 능력을 키워주는 수업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에 필요한 진짜 실력은 '수능 1등급 몇 명 나왔는지'가 아니라 '사고력과 창의력, 자기주도학습력'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분명히 교육은 진보하였고, 아이들의 진정한 '실력'도 키워줄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어 나아가는 중이다. 지금의 학교는 5지 선다 객관식 수능 1등급보다도 더 중요한 역량교육을 실현하는 중이며, 모든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키워내는 중이다.

그런데 2022년 현재, 다시 물음표가 떠오른다. 무엇을 '실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 과거로 가는 것을 실력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장 경험과 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이 부재된 '응답하라 라떼는'이 아닐까? 강산이 바뀌는 동안 교단에서 체감한 '실력'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박새별 광주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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