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스승의 날과 5·18, 그리고 공감

@조선중 월곡중학교 교사 입력 2022.05.17. 14:19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이 더 많겠지만, 나는 해마다 이날이 되면 왠지 모를 민망함으로 빨리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스승의 날이라고 오랜만에 연락하거나 학교를 찾아오는 제자들, 겨우 안면을 익힌, 아니 코로나 시국엔 그마저도 절반밖에 모르는 제자들에게 각종 축하 행사를 받는 다는 것, 하루일지언정 스승이라는 칭호로 불린 다는 사실 자체가 겸연쩍게 느껴지는 이른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휴일이라 그런 걱정은 일단 접을 수 있었다. 근데 이마저도 없다면 교직이나 교육의 본질에 대해 어느 누가 한번 고민해 볼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대체할만한 다른 날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울러 5월 18일은 5·18 민주화운동 42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국적으로, 특히 광주의 지역 사회와 학교 현장에서는 이날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학교에서는 이번 5·18 행사의 테마를 '공감'으로 정하고 당시 학생과 시민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도록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사회 환경과 지향하는 주요 가치가 변화됨에 따라 과연 지금의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지는 솔직히 걱정도 된다. 한 개인이 타인에게 진정 공감하는 마음을 스스로 가지는 것도 힘든데, 몇 번의 교육 활동을 통해 다수의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한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형식적인 공감으로 흘러 5·18의 슬픔을 직접 경험한 세대를 단순히 동정하는 것에만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공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sympathy'의 어원은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sun pathein'에서 유래하여 '타인의 마음, 타인의 감정, 타인의 현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느끼고 지각 한다'는 뜻이라 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들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활용해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는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이를 볼 때 공감은 단순히 타인이 기쁘면 함께 기뻐하고, 슬프면 함께 슬퍼하는 감정을 공유하는 '동감'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이 처한 상황과 관점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요즘 들어 부쩍 시력, 청력, 기억력 등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까? 그렇다면 공감하는 힘(공감력이라고 하자)은 어떨까? 그것도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능력일까?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를 보면 한쪽은 아파해도, 다른 쪽은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내고 있어 공감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어 보인다. 얼마 전 마약에 취한 한 젊은이가 길 가던 노인을 폭행하여 쓰러져 있는데도 50여명 이상이 그냥 지나쳤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다.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공감력의 감소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사회적 소수에 대한 다수의 공감은 정말 이끌어 내기 힘들다. 공감은커녕 대중의 관심조차도 불러일으키기 힘들 때가 많다. 한 공당의 대표와 20여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해 온 단체와의 말도 안 되는 갈등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그나마 일시적으로 높여주었다. 우리 사회의 씁쓸한 아이러니 중 하나다.

옳든 그르든 어느 시대든 그 시기의 지성인들이 추구하는 시대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 교육의 주요 지향이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이념'이, 일제강점기는 '독립 운동'이, 해방과 분단 이후는 사회의 '민주화'가 그것이다. 물론 상황이 끝난 지금도 일제와 분단 상황의 잔재는 우리 사회 저변에 뿌리 깊게 남아 여전히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 현시대의 지성이 추구하는 시대적 가치는 무엇일까? 현시대의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기후 환경, 인권, 차별과 혐오 배제, 다문화, 안전, 성평등, 양극화 해소, 참정권 등등 수많은 가치들이 있고, 포괄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내용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가치는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뚜렷한 과제가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좀 더 세분화된 다양한 가치로 선택하기 힘들 정도이다.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는 가치이기에 학교에서는 조금씩이지만 거의 모든 것을 다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개개인의 학생들의 지향도 다양하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스승들의 피할 수 없는 과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얼마 전 일괄적인 학교당 교원 수 감축을 예고한 교육부의 일방적인 공문이 내려왔다. 다양한 접근을 통해 진정한 공감을 이끌어 낼 교육을 위해 교사들이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주장하고 있는 시점에 말이다. 수많은 행정업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가치를, 다양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도록, 오로지 교육에만 집중하고 싶기를 원하는 교사들에게 말이다. 누구의 공감력이 부족한 것일까? 조선중 월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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