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다닐라의 성장과 우리의 미래

@정유하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입력 2021.10.12. 11:49

러시아에서 중도입국한 지수(다닐라)가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으며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아이다. 귀국 1년 반쯤 후에 우리 학교에 진학한 그와 나는 처음에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러시아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는데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국어가 미숙한 그가 영어를 제외한 기초학력진단평가에서 점수가 낮게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러시아에서 모범생이었던 그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 언어와 시험점수에 기가 죽어갔다. 잘생긴 외모에 눈을 주는 여학생들의 관심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와 격려가 되지 않았다. 유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단어장을 만들어가며 노력하던 지수는 이제 수업도 잘 따라가고 친구들과 장난치며 다니는 자신감에 찬 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지수의 꿈은 독일로 유학가서 경제에 관련한 공부를 하고 은행에 취업하여 국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었다. 독일인인 외할아버지가 동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2학년인 지금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말한 그의 꿈은 게임 프로그래머이었다. 한국사를 배우면서 재미있었는지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서 전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게임을 통해서 한국의 역사를 알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꿈이 한국사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놀라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어느 지점에서 꿈에 변화가 생겼을까' 더듬어보니 사회선생님의 지수와 관련한 칭찬이 생각났다. 매시간 학생들의 발표수업을 진행하면서 모든 학생들에게 5개의 문제를 만들어오라는 과제가 나가는데 지수는 매번 사고가 필요한 문제를 만들어 온다고 했었다. 언어와 한반도의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2년과 2020년의 초·중·고 학생 통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2012년의 672만명의 학생수가 2020년에는 535만명으로 20% 줄었다. 반면에 2012년 4만7천명이었던 다문화 학생은 14만7천명으로 214% 증가하였다.(교육통계서비스) 전체 학생수는 줄고 있는데 다문화 학생들의 비율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인 지수는 영어와 한국어를 잘하고 있으며 러시아어는 모국어로 가지고 있다. 게다가 수학도 잘한다. 결국 그들도 우리의 미래이며 힘이라는 것이다.

휴가 때면 겨우 시간을 내주는 딸은 내가 봐야 할 영화를 정해두고 자신의 스케줄대로 진행한다. 이번에는 내 눈에 유치한 스틸 컷으로 홍보하는 '오징어게임'시리즈였다. 보는 내내 '뭐지, 뭐지?'를 연발했지만 79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기생충, 미나리, BTS 등 한국의 문화상품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우리의 자존감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 과거 몇몇 미래학자들이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라는 믿기지 않는 예언을 했지만 믿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차례 세계에서 긍정적인 의미의 1등을 차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순위는 나온 적이 없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청결도도 1등일 것 같다. 단독주택인 우리 집 대문 앞에 택배상자를 던져놓고 사라지는 고마우신 기사아저씨가 미운데, 택배는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처럼 여러 부분에서 시민의식이 수직 상승하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여기에 더해 다문화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끌어안는 시민의식, 상호문화의식을 가진 사회가 된다면, 그들을 존중하고 소중한 우리의 미래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더 선진화될 것이며 자랑스러운 나라가 될까?

한 살 어린 지수 동생 현수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인지 시간만 나면 정보검색대를 하나 차지하고 러시아어로 된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다. 현수는 러시아의 고대문화와 한국의 고대문화를 오가는 SF판타지 소설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캄보디아인 어머니의 딸 민아에게 내가 "왜 넌 그렇게 인기가 많아?"하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민아는 결국 올해 우리 학교 학생회장이 되었다. 모두 내 나라의 아들과 딸이며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 미래이다. 정유하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4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