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그'의 탄원서를 대신하여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입력 2021.01.18. 17:00

자격 정지 1년. 그에게 내려진 1심 판결이다. 판결의 근거는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어떤 후보를 지지해달라 보낸 문자 네 통이다. 그는 걸걸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나름 창을 잘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꾼이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를 무척 사랑한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중국에 묻힌 우리나라 항일독립의 역사지를 탐방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잠시 떠나오기도 했다. 가서 그는 나라를 잃고 서러웠을 독립 운동을 생각하며, 존재하였으나 우리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그 끌끌했던 운동가들 앞에서 한참 울었다고 했다.

언제였을까?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났던 때는 2014년 세월호의 비극이 벌어진 그 4월쯤이었을까. 생때같은 목숨을 앞세워야 했던 유가족들 곁을 지키던 그를 만나 함께 세월호 참사로 숨진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108배를 올리던 청계천 거리 어디쯤에서 그의 얼굴은 그늘이 깊었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때는 오늘처럼 눈이 많이도 내리던 2016년 12월이었다. '이게 나라냐' 구호를 외치며, 하야송을 부르며 우린 그와 함께 매주 금남로에서 열리던 토요집회를 지켰다. 그거라도 해야 하던 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 줄 것인지라는 시대의 물음 앞에서 그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촛불을 드는 것이었다. 그와 우리는 그해 매우 정치적이었다. 토요일 저녁 우리와 그의 낭만은 촛불 끝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민주 시민 교육은 오월을 기억하는 거리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해를 넘기던 집회에 끝까지 함께 했다. 끝까지 가보자던 그 촛불은 마침내 과거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였다. 그리고 그와 우린 또다른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다. 광주의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한다. 유쾌한 언변으로 그해 겨울 '싱건지'같은 청량감 가득한 발언을 쏟아내며, 과거 딱딱하기 이를 데 없던 집회를 예향의 도시 광주답게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참 아름답게 끄집어 올렸던 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담담했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린 그에게 내려진 사법부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개정의 대상이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이 글은 어느 한 사람 '그'를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 곁에 있는 무수한 '그'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없다는 주장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회원국으로서 갖는 자격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민주 국가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문제다. 비교의 문제가 아니다. 백번 양보하여 교육 활동 중도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출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법이라기보단 폭력에 가깝다.

그는 2021년 대한민국 교사다, 정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는 변했고 시민 의식은 성장했으며, 이를 반영하듯 선거 연령은 하향되었다. 선거 연령의 하향은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해오는 우리 후대들에게 보내는 사회적 신뢰다. 이처럼 변하는 시대에 교사들에게 정치적 중립이란 모호한 언어로 정치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 것은 결국 교사에 대한 불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며, 교사에게 침묵만을 강요할 뿐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가치 판단도 내리지 말라는 것은 한편 이렇게 들리기도 한다. 어떤 정치적 판단도 유보하고 기존의 질서를 공고히 하라고. 때론 이는 비겁이다. 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 하지만 추울수록 사람들은 따뜻한 봄에 대한 간절함만 키우기 마련이다. 김현주(광주인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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