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청렴결백한 선비의 정신 곳곳에 스며있네

입력 2022.12.01. 17:32 나윤수 기자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㉘합천역 <하>남명 조식을 만나다
조선 실천유학 대가·영남학파 거목
삼가면 외토리 남명 흔적 곳곳에
학문정진·후학양성 뇌룡정부터
학문·덕행을 기리는 용암서원 등
시류에 편승 않고 변화개혁 추구
청렴결백과 강직함 엿볼 수 있어
지역사회 남명선비길 조성 비롯
교과서에 수록 움직임 등 활발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의 생가터. 1995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㉘합천역 <하>남명 조식을 만나다

남명 조식은 1501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처사(處士)로 살았다. '좌퇴계 우남명'이라 할 만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남명 조식이지만 역사에서는 홀대에 가깝다.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청빈한 삶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몇 곱절 벼슬아치를 능가하며 위기의 시대를 대비케 한 조선판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로 살다 간 달빛 내륙 철도의 인물로 합천에서 그를 만난다.


◆엇갈린 운명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은 동갑내기로 조선 지성사의 최고봉들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서로 죽이고 죽는 사화 시대였다. 퇴계는 벼슬길에 나아가 세상을 바꿔보려 했고 남명은 철저히 몸을 숨겼다. 퇴계는 안동 출신이고 남명은 합천 출신이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서찰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조선 조정은 남명에게 끈질기게 벼슬을 내렸다.

남명의 학문과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는 퇴계 이황도 남명을 끌어들이려 애썼다. 그러나 남명에게 벼슬자리는 하잖은 것에 불과했다. 둘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안목의 차이였지만 남명에게서 현실 정치는 질 낮은 모리배들의 놀이터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명은 조선 전기 불교나 노장사상이 섞여 있는 초기 주자학 실천가에 가까웠고 퇴계는 후기 주자학을 정비해 성리학을 집대성한 이론가에 가까웠다. 퇴계는 주자학 예(禮)로써 세상 이치를 이해하려 했고 남명은 의(義)라는 마음 공부를 통한 실천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경상우도 남명과 좌도 퇴계학파는 영남 학문의 양대 산맥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남명 조식 선생이 임금에게 올렸던 을묘사직소라는 상소문.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목숨을 건 '을묘사직소' 조선을 흔들다

1555년 명종 10년 조정은 조식에게 단성 현감직을 내린다. 이때 벼슬자리를 마다하고 내린 사직소가 저 유명한 '을묘사직소'다.

"대비(문정왕후)께서는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문종)께서는 나이 어린 선왕의 외로운 고아에 불과한데 억만 갈래로 갈라진 백성의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려 하십니까"라고 묻는 직설적 상소다.

서슬 퍼런 사화시대 수렴청정의 문정왕후를 '일개 과부'로 임금을 '실권도 없는 고아'로 지칭했으니 누가 봐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조정이 발칵 뒤집힌 것은 불문가지다. 표현은 과격했고 임금은 분노했다. 조식의 상소는 당시 수렴청정 외척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온갖 술수가 난무하던 시기에 목숨을 내놓고 한 외로운 지식인이 올린 고뇌에 찬 상소였다. 민심은 흉흉해 임꺽정의 난이 일어났고 왜구의 침략까지 잦아 나라 안팎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이때 남명 조식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다'고 포효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알았다. 초야에 묻혀있지만 누구보다 깨어있는 인물이 남명이라는 것을. 그것은 조선에 마지막 남은 양심의 소리였다. 조정이 그를 거두기에는 남명의 영향력은 너무나 컸다. 그를 없앴다가 닥쳐올 후과를 조선 조정은 감당키 어려웠다. 그만한 인물이 역사에 또 있었던가.


◆칼을 찬 선비

목숨을 건 항소 이후 남명은 '실천하는 지식인' 반열에 올랐다. 소인배라면 우쭐할 테지만 남명은 달랐다. 안으로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이름이 알려져 숱한 제자들이 배움을 청했다.

그런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자신에게 티끌만 한 허물도 허락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성리학에서 보자면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선비 남명은 실제 칼을 찼다. 경의검(敬義劍)이다. 불의와 타협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결연한 표식으로 몸에 칼을 지니고 옷에는 자명종을 달았다. 자명종 이름은 성성자(省省子)다. 깨달을 성자가 두 개나 있다. "스스로 경계하여 깨닫는다"는 뜻이다. 칼과 종으로 무장한 그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기상이 있을 뿐이었다.

칼을 찬 선비 남명 조식은 책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조식의 학문은 실천해야 의미가 있었다. 남명은 선비임에도 무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실천 지식을 따른 제자들이 훗날 의병장이 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인홍, 최영경, 정구, 하항, 광재우 등 기라성 같은 의병장 50명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다.

살아생전 남명은 출몰하는 왜구들을 보고 제자들에게 무예를 익히도록 독려한다. 그가 죽은 지 딱 20년 만에 임진왜란이 터졌다. 남명이 죽자 제자들은 죽은 스승 남명의 명령대로 그의 혼령과 함께 용감히 싸운 것이다.


합천 뇌룡정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는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남명 조식이 지은 정자.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남명 정신 부활시키려는 합천군

생전 남명은 지리산을 12번이나 올랐다. 지리산 계곡을 오르면서 그는 선비로서 삶의 바른 자세를 묻고 깨닫고 실천했다. 말년에 지리산에 오를 수 없게 되자 아예 거처를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곳으로 옮겼다.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진주에서 30분 거리로 남명의 고향이다. 48세 때인 1549년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길렀던 곳이다. 남명은 인생 황금기를 뇌룡정에서 보낸 셈이다.

최근 합천에 남명 바람이 불고 있다. 양천강이 유유히 흐르는 길이 남명 선비길이다. 초겨울 남명 선비길은 조금 쓸쓸하다. 남명의 성품을 닮아 있는 듯 서늘하다. 시작점 큰 느티나무가 남명 선비길 출발점을 알린다. 나무 아래 남명의 시 한 수가 바윗돌에 새겨져 있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도에 지나침이 없다"는 달관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마을 안쪽 뇌룡정과 용암서원은 남명 조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뇌룡정에서 남명은 은거자가 빠지기 쉬운 관념적 허위 의식을 철저히 경계 했다. "은거하되 때가 되면 용처럼 나타난다"는 뜻의 "시거이 용현(尸居而 龍見)"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시거이 용현은 장자에 나오는 말로 "가만히 때를 기다리다 우레와 같이 용처럼 나타난다"는 뜻이다. 명경지지수로 살다가도 때가 되면 뇌성 병력같이 질타하던 남명의 기질과도 닮아있다.

뇌룡정은 안과 밖의 세상을 구분 짓고 있다. 담장 안은 사람의 마음, 담장 밖은 마음 밖 세상이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삿된 마음을 미리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암서원은 남명 제자들이 영남 우도학파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이곳에서는 남명의 안빈낙도적 삶과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편지와 을묘년 상소비를 새겨 놓았다.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왜 이 시대에 또다시 남명인가

우리 역사에서 남명 조식은 가장 저평가된 인물 중 하나다.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도 교과서에서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이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얽혀 있는 듯하다.

남명 사상은 "옳은 일을 하되 나서지 않는다"는 개인적 지조가 그를 가리는 측면이 있다. 여기에 인조반정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한몫을 거든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역사적 패륜아로 기록되면서 남명의 제자들이 정치 무대에서 대거 사라진 것이다. 일제시대 민족 정기를 끌어내리기 위해 제자들의 의병장 활약을 축소한 것도 요인으로 꼽을 만하다.

더 큰 이유는 우리들이 남명을 찾지 않은 탓이다. 늦게나마 합천은 조식을 교과서에 수록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용암서원 보존회와 경남교육청 등이 나서 성리학의 실천가적 삶을 산 남명을 교과서에 수록하기 위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 시대에 또다시 남명인가. 남명은 우리에게 보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인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의무란 뜻이다. 즉 사회 지도층이 책임 의식을 갖고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의무를 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남명 조식은 벼슬길에 나아간 적도 없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로서 남보다 훨씬 많은 도덕적 의무를 다했다. 별것 아닌 공에도 자신을 내세우느라 책이 모자랄 판에 큰 공을 세우고도 뒤로 나앉은 삶을 살다 간 인물이 남명이다.

소리가 요란한 시절이다. 말은 많아도 정작 쓸 말이 적어진 시대 아닌가. 남명이 그리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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