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광주로 공동 심층기획
대학·일자리 찾아 고향 등지고 수도권행
지방 남은 청년들 인프라 격차 큰 박탈감
"균형발전 통해 지역산업 자생 생태계 조성
다원주의 세대 라이프스타일 충족 공간 필요"
[청년소멸보고서 ⑤ 지방에서 태어난 죄]
"받아도 저는 반밖에 받지 못하고 반밖에 모으지 못한다는 거죠. 서울에서 태어난 친구들은 모르는데 지방러(지방 출신 서울·수도권 거주자)에게 그게 가장 부러운 스펙이에요."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사회과학계열을 전공한 김진욱(30·가명)씨는 4년전 서울에 터를 잡았다. 광고의 매력에 빠져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었지만 광주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작은 회사들도 대부분 서울에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우물 안 개구리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울에 올라와 취직했는데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아요. 돈도 많이 들고 이곳에서는 제가 이방인이라서 외롭고 고되다 보니 애초에 서울에 태어났으면 좋겠단 생각이 많이 들죠. 그렇다고 광주에 내려간다 하더라도 맞는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방 한 칸에 갇힌 '서울살이'…"여기서 태어났으면"
높은 월세와 생활비는 그의 어깨와 미래를 짓눌렀다. 서울에 사는 여느 지방러처럼 당연히 안고 가야 하는 패널티인 셈이다. 그의 직장이 있는 강남구에서는 원룸 전세금만 지방 대도시 아파트 전셋값에 맞먹는다. 직장 근처에 잡은 다가구 주택 7평짜리 원룸은 1천만원 보증금에 월세 70만원이다. 이마저도 좋은 조건이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밀려드는 청년들로 해마다 월세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 같은 지방러라고 해도 부모님이 전·월세, 생활비 등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지방러와는 또 다른 격차가 벌어진다. 흙수저 지방러의 비운인 셈이다.
그는 서울에 집을 갖는 것을 포기했다. 만나는 사람은 있지만 결혼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씨는 "캥거루족(독립할 나이가 돼도 주거·재정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들) 소리를 들어도 부모님 옆에서 착실히 돈 모으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무리 '서울살이'가 고되도 김씨는 서울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괜히 서울로 오고 싶어하는 게 아니다. 일자리가 많은 것도 있지만 조금만 걸어도 온갖 문화 생활과 즐길 곳이 넘쳐난다"며 "광주에 있는 친구들도 서울에 올라오지 않은 걸 후회하는 경우가 많고 서울에 사는 것을 부러워 한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해 남아 있는 청년들도 좌절감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전남대를 졸업해 광주에서 3년째 직장생활 중인 김모(28)씨는 "비록 우물 안 개구리라도 내 고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남았다"면서도 "방송 예능이나 유튜브에서도 온통 서울 얘기고, 수도권으로 올라간 친구들의 SNS가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가득할 때 박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재 같은 서울공화국의 청년들이라면 서울에 사는 게 부러울 수밖에 없다. 광주에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문화적 혜택이 많다"며 "주변 친구들도 꼭 일자리가 아니라 서울에서 살면서 문화 혜택을 누리고 싶어 취업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가자 수도권으로"…지방청년소멸 가속화
김씨처럼 해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과거에도 고등교육과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향했지만 해마다 그래프가 더 가팔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순이동자수(전입-전출)는 2017년 1만6천명에서 2018년 6만명, 2019년 8만3천명, 지난해 8만8천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인 20~30대의 수도권 유입이 많았다. 지난해 연령별 순유입률(세종시 제외)을 살펴보면 20대의 경우 서울이 3.1%로 가장 높았고 경기가 2.2%로 뒤를 이었다. 30대에서도 경기가 2.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서울은 -1.9%였는데 아파트 수요가 높은 특성상 경기도로 빠져나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호남지역인 광주에서 6천100명, 전남 9천800명, 전북 8천명이 순유출됐는데 대부분 수도권(2만1천명)으로 빠져나갔다.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일자리가 늘고 있는 중부권(6천명)으로도 많이 빠져나갔다.
특히 호남권 순유출 대부분이 10대(3천명)와 20대(2만3천명), 30대(3천명) 등 청년층이라 심각성을 더했다.
류재준 광주시 균형발전정책과 균형발전지원팀 전문위원(도시·지역개발학 박사)은 "극단적으로 말해 지방은 수도권 식민지다. 이곳에서 대학을 나와 여기서 취업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석·박사라고 하는 고급인력은 더욱더 이곳 대학원을 나와 갈 만한 데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청년 인구의 수도권 쏠림은 지방소멸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인구가 팽창하던 때와는 달리 인구가 더이상 증가하지 않으면서 지방도시의 활력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지리적으로 먼 지역, 특히 산업적 기반이 취약한 광주·전남에서 심각하게 불균등한 성장이 진행되고 있고 핵심 인적자본인 20~30대 청년인구의 수도권 인구 유출로 지역 존폐가 문제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광주시 청년 인구(만19~39세)는 최근 5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 2016년 43만7천여명에서 2017년 43만명, 2018년 42만7천여명, 2019년 42만2천여명, 2020년 41만4천여명이다. 그러면서 이 기간 광주인구대비 청년인구 또한 29.8%, 29.4%, 29.2%, 28.9%, 28.6%로 비중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권 대학으로, 지역대학을 졸업한 뒤 수도권 기업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광주·전남지역 대학 졸업자의 지역 잔류율은 50%를 넘지 못했다. 두 명 중 한 명은 졸업한 뒤 지역을 떠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 학생들은 처음부터 수도권 취업이 쉬운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올해 광주·전남 대학교 상당수 대학들이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었다. 지방거점 국립대로 위상이 높다는 전남대조차 정시 경쟁률이 지방거점 국립대 중 가장 낮은 2.7대 1을 기록하면서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부산대(3.24대 1)나 경북대(3.11대 1)와 같은 경상권 거점 국립대학은 물론 충남대(3.29대1), 충북대(4.27대1) 등 충청권 거점 국립대학보다도 한참 낮았다. 광주·전남지역 청년들에게서 다른 지역보다 더 높은 '탈광주·전남'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배훈천 광주시민회의 대표는 "광주에는 서비스업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학생과 취준생들이 최저임금 단시간 일자리마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며 "광주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니라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도시가 됐다"고 지적했다.
◆광주出 보다 '탈지역' 막는 게 중요
수도권으로의 청년층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가장 근본적 해결책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통한 자생 가능한 지역산업 생태계 조성이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지역균형발전으로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산업이 고도화되고 첨단화되면서 과거처럼 본사는 서울에, 공장은 지방에 두는 이원화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되기도 힘든 상황인데다 금융· IT·서비스산업이 철저하게 수도권 중심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타지역 청년들을 자연스럽게 빨아들이고 있다.
류재준 광주시 균형발전정책과 전문위원은 사실상 퇴보하고 있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국가균형발전은 구호만 남아 있고 작동은 멈춰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지부진한 이유는) 아직도 중앙집권적 체제가 견고하다는 뜻이고 현재처럼 국가 공모방식으로는 지역이 미래 비전이나 전략을 세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이 이뤄져야 하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 본사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도 지자체가 지방소멸의 위기를 저출산 문제에서 찾으면서 근본적인 진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전남의 인구문제는 저출산이라기보다는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막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광주·전남의 고질적인 문제로 다양한 일자리 부족과 함께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청년세대들이 선호하는 공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지역의 매력도를 높여 청년인구를 지역에 정착시키기 위한 지자체의 청년 유입 정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인구감소대응 지방자치단체 청년유입 및 정착정책 추진방안'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가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은 다양성, 취향,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충족되는 삶의 질이 높은 곳이다.
최진 광주시 균형발전정책과 전문연구원은 "청년이 우리 지역에 머물고 또 청년이 찾아오는 광주를 만들기 위해 일자리, 주거, 복지, 문화 등 분야별 대응방안 수립이 필요하다"며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특색 있고 긍정적 기운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야 청년이 찾아오고 또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청년소멸보고서ㅣ인터뷰] "국가균형발전정책 헛구호만 있다"
류재준 광주시 균형발전정책과 전문위원
"국가균형위 유명무실, 산하연구원 필요
반기업 정서 대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국가균형발전정책에 구호만 있고 작동이 안 되고 있어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류재준 광주시 균형발전정책과 전문위원은 대다수 지방 도시들이 안고 있는 청년 유출 문제와 관련해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지적했다. 그는 "국가균형발전위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역이 잘 살게 하는 것인데 (현재) 더 고착화되고 심화되지 않았느냐"며 "참여정부 이후 혁신도시 이전 빼고는 지역에서 체감하는 게 별로 없고 그마저 추가 공공기관 이전이 멈춰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자문기구에 불과해 유명무실하다"며 "참여정부 때처럼 행정위원회로 격상시키고 자생적으로 이론을 구축할 수 있는 산하 연구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류 전문위원은 현행 국가 공모사업 위주의 정책을 비판하며 중앙집권적인 틀 자체를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그게 혁신이 되는 현실"이라며 "광주가 장기적으로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로 지자체 손발을 다 묶은 상태에서 지방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없다"며 "구호로만 균형발전 정책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공(空)하다"고 꼬집었다.
류 전문위원은 광주·전남 지자체 차원의 실질적인 대안 마련도 촉구했다. 그는 "옛날처럼 국가에 손 벌리고 있어선 안 된다. 지자체가 국가정책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정부가 그려 놓은 정책이 나오고 대안을 마련하면 늦는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지스트(GIST)나 전남대, 조선대와 같은 지역 대학과 광주전남연구원, 각 지방정부 기관들과 함께 지역 미래 전략을 새롭게 그리고 전략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금 시대는 행정이 훨씬 뒤처져 있어 행정이 절대 이끌면 안 된다"며 "대신 대학, 기관들과 밀접한 거버넌스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양질의 일자리는 결국 기업들이 만들어주는데 광주 내 반기업 정서가 (기업 투자를) 억압하다보니 고급인력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지역청년 유출을 막기 위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수차례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가 있었지만 반기업 정서로 결국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예컨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형복합쇼핑몰 유치와 관련해서도 "우리의 민낯을 보면 쇼핑을 어디로 가느냐. 서울로 부산으로 가는 게 현실인데 대규모 쇼핑센터(프리미엄아울렛 등)가 생기면 반대하고 하는 게 이율배반적인 태도"라며 "(광주가 대형복합쇼핑몰을 통해) 호남의 거점역할을 하고 파이를 키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수천명의 청년들과 여러 기업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삼섭기자 seobi@srb.co.kr·이예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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