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광주로 공동 심층기획
19살부터 제빵일, 1억 넘어가는 비용에 동업
자금 메꾸기 급급하다 결국 가게는 공중분해
기성세대들은 "도전해보라"···현실은 깜깜
청년 스타트업 창업 후 지속 지원대책 절실
[청년소멸보고서 ④'쩐의 벽' 앞에 멈춰선 창업 꿈]
19세 때부터 제빵 일을 했다는 김지만(35·가명)씨는 자신의 가게를 얻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지역 제과점에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기술을 배웠다. 20대 중반부터는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 호텔에서 제과장을 하면서 자신감을 쌓았다. 비록 고향은 아닐지라도 애정 깊은 광주에서 떳떳하게 성공해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젊은 청년들을 고용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창업을 꿈꾸는 청년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선 막대한 창업비용이라는 벽을 넘어야 했다.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대 청춘을 다 바쳐야 했다. 하지만 1억원이 넘는 창업비용엔 턱없이 부족했다. 동업자를 구한 뒤에야 동명동에 자신이 기획한 베이커리카페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족한 창업자금을 메꾸기 위한 동업은 가게가 공중분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대 전부가 담긴 것과도 같았던 첫 창업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김씨는 "창업자금이 부족해 동업했던 게 큰 실수였다"고 자책했다.
그는 "부모 지원을 충분히 받는 친구들도 많은데, 그들은 더 손 쉽게 경쟁력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부모 지원을 받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저처럼 월급을 모으거나 빚을 내야 한다"며 청년 창업에도 빈부격차가 있는 현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첫 창업의 아픔을 딛고 2년 전 빚을 내 광산구 선운지구에 베이커리카페를 냈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았다. 그는 "매일 4시간도 못 자고 일하지만 오히려 적자만 나고 있다"며 "두 달 뒤 가게 재계약을 앞두고 가게를 폐업할지 고민 중이다. 이번에 폐업하면 더 이상 창업은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창업진흥원이 지난해 전국 업력 7년 이하 8천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창업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 장애요인(복수 응답)으로 '창업자금 확보에 대해 예상되는 어려움'이 70.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창업실패 및 재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42.5%, '창업에 대한 전반적 지식, 능력, 경험 부족'이 31.9%, '창업준비부터 성공하기까지의 경제활동 문제' 23.2%였다.
창업자 연령을 살펴보면 20대 이하는 4.3%에 불과했다. 30대는 20.1%로 20~30대의 창업 비중은 24.3%에 그쳤다. 반면 40대(30.4%)와 50대(32.7%) 비중은 63.1%였다. 60대 이상은 12.4%였다.
창업 시 소요자금은 평균 3억800여만원으로 이 중 자기자금이 94%를 차지했다. 자기자금이 부족한 청년들, 그 중에서도 20대 창업은 극히 어려운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빚까지 '영끌'해야 창업할 수 있는 청년들의 경우 실패하면 부채 때문에 경제활동이 어려워 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창업에 도전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창업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청년들이 마음 놓고 창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창업까지 이어진다 하더라도 자금력이 부족한 청년들은 본인의 생활비조차 마련하지 못해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어느 세대보다 많다는 것도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청년 창업조차 '부모카드'를 쓸 수 있는 청년들은 특권층이 되고 이는 다시 부의 대물림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오늘도 대부분 청년들은 고된 삶의 언저리에서 창업조차 꿈꾸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다.
청년 창업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창업자금 지원 덕분에 실제 청년 창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또 국내에 불고 있는 벤처창업 열풍 또한 이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정책자금이 창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업을 지속하기 위한 지원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실제 현장과 동떨어진 행정으로 창업 청년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13년 발표한 창업실태조사(현 창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갓 창업한 기업인 '창업 1년차 기업' 중 39세 이하가 사업주인 청년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5.5%였다. 2020년 같은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35.2%까지 올라갔다. 2013년 3.0%에 그쳤던 20대 이하의 업력 1년차 비중은 9.1%까지 올라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청년 사회·경제실태 조사(전국 18~35세 3천520명)에 따르면 조사 대상 청년 3명 중 1명(34.9%)은 창업을 생각해본 것으로 나타나는 등 창업에 대한 열망이 높고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초기 창업자금 마련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창업을 이룬다 하더라도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업력 1년차에서 청년 창업 비중은 35.2%를 차지했지만 업력 3년차에서는 이 비율이 26.5%까지 줄어들었다. 업력 1년차인 40대와 50대 비율이 63.1%에서 업력 3년차에 61.6%로 소폭 줄어든 것에 비해 눈에 띄는 수치다.
청년 창업자들이 창업에 서툴고 벤처 등 실험적인 창업을 많이하는 데 반해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자금은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으로는 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창업 시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업력을 지속하는 데는 소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 농산물을 활용해 '튜브형 잼'을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는 황현조(28)씨는 "정부나 지자체, 기업 등에서 실시한 공모전에서 다수 수상할 정도로 아이디어나 사업성 측면에서 인정 받으면서 여러 창업프로그램 지원 사업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업력 3년차인 현재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직원 인건비는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창업자에 대한 임금 보전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청년 창업은 사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청년창업자가 임금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과도한 (지원을 받기 위한) 서류 작업과 직원 임금 문제 등 청년들이 창업 초기에 지치지 않도록 보조해줄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이륜차 주행모니터링 서비스를 개발해 사업화를 하고 있는 박추진 별따러가자 대표도 지난달 24일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며 정책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박 대표는 "광주에도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창업한 후) 생활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최소한 자신의 생활비는 나와야 한다. 스타트업 초기 지원에 (창업자) 인건비를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장과 동떨어진 행정 또한 청년 창업을 가로막고 있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많다.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하는 김지만(35)씨는 "정부가 저리로 지원하는 청년 창업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공간 임대부터 운영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다 갖춰야 한다"며 "대출을 받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베이커리카페이지만 실험적이고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주류를 판매하려 했는데 제과업이 아니라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야 해 제과업 맞춤형 지원을 받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하는 분들이 실제 현장에 나와서 들어보지 않고 서류로만 해결하니 (정책에서) 소외받는 사람이 생기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일침했다. 특별취재팀=임장현기자 locco@mdilbo.com·이삼섭·이예지기자
[청년소멸보고서ㅣ인터뷰] "광주 청년창업 정책 중구난방···'헤드쿼터' 필요"
하상용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예산 늘었지만 질적 개선은 미지수
창업 기관 아우를 지휘부 역할 필요
"전세계적으로 청년 창업과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광주시도 여러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창업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상용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지난 9일 청년 창업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적 뒷받침이 커지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 정부의 청년창업정책 예산은 2016년 5천700억원에서 올해 1조5천억원 가량으로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늘어난 예산이 고스란히 질적인 청년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는 게 하 센터장의 지적이다.
특히 광주 내에도 시청을 비롯한 많은 창업 지원기관들이 있지만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어 정책적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내놨다.
그는 "광주는 광주시·구청·대학·공기업·사업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청년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게 문제점"이라며 "수많은 청년창업 지원 정책들을 한 데 모아 청년들이 쉽게 정보를 취득하고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창업 지원 기관을 지휘하는 '헤드쿼터'가 필요하다는 것.
그는 "광주 관내 청년창업 정책을 총괄하는 헤드쿼터가 생기면 창업 분야별로 청년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며 "이를 통해 중복 지원을 막으면서 다양한 창업자들에게 정책자금이 돌아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는 상품을 개발하는 단계까지만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후속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별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청년 창업가들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개인이나 일부 사업체에서 청년사업체를 지원하는 엔젤투자가 있지만 현재 광주는 엔젤투자가 매우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센터장은 창업을 꿈꾸거나 창업한 청년들에게 정책 지원에 대한 의존을 경계하라는 조언도 했다. 그는 "청년창업 정책은 단순히 청년기업을 육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주는 정책이기도 하다"며 "단순히 금전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회사를 책임감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이란 건 매우 고되고 힘든 일이면서도 그만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장현기자 locco@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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