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

@김꽃비 독립기획자 입력 2024.04.23. 17:57
김꽃비 독립기획자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반투명한 비닐로 만든 깃발에 파란색 물감으로 커다랗게 쓴 문장이 하늘 위로 펄럭이고 있었다. 한낮의 민주광장은 생각보다 한산했고 저마다 노란색 팔찌, 앞치마, 배지 등을 하나씩 지닌 활동가분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이크를 가진 진행자가 걸어가는 청년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작은 공연들이 이어지는 등 다양한 추모제의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월호 10주기, 4월16일의 민주광장의 시간은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이날은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세월호가 벌써 10주기"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다들 10년이 지났지만, 뉴스가 나오던 그 순간에 본인이 뭘 하고 있었는지 대부분 생생하게 기억했다. 나 역시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던 그 순간의 충격은 물론, 그때 같이 있었던 사람, 상황, 했던 말 같은 것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도종환 시인이 시에서 '화인(火印)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라 했던 것처럼 2014년 4월 16일을 지켜본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는 공동의 흉터가 됐다. 잊고 산 듯했지만 4월이 되고 흩날리는 노란 리본을 보니 밀려오는 아픔과 슬픔이 2014년의 나를 소환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오는 이 감정처럼 세월도 돌이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2017년에는 바닷속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았던 세월호가 드디어 물 밖으로 나왔다. 인양된 선체는 일단 목포신항에 거치됐다. 3년여 만에 선체가 인양되면서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관련법 제정도 속도를 내며 진전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세월호 선체의 인양 이후로 흐른 세월이 벌써 7년. 세월호는 지금도 목포신항에 그대로 있다.

인양된 세월호는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억과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계획됐다고 한다. 그러나 침몰 후 해저에서 오랜 시간 부식되면서 붉게 녹슬어버린 배는 이곳저곳이 떨어져 나갔고 관리도 향후 거치장소 및 활용 대한 문제도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논의되며 방치되고 있다. 배의 한쪽에 영어로 칠해진 'SEWOL(세월)'이라는 글씨만이 색은 바랬으나 여전히 그날을 날카롭게 떠올리게 한다.

기대가 실망이 되기까지 10년. 해결된 것은 없었다. 진상규명은 물론 선체 인양, 기억관 조성, 관련 법제정 등 모든 것들이 더디게 진행되는 동안 그래도 무언가 바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고 한편으로는 세월호를 향한 분노도 차츰 무뎌졌다. 어떤 4월에는 세월호를 아주 잠깐만 떠올리기도 했다. 다만 해야 할 일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 답답함은 결국 이태원 도심 한복판에서 세월호와 똑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안전한 대한민국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고민이 휘발되어 버렸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방향 정도는 잡아줄 것이라 기대했던 국가는 이번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을 지닌 국가에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함께 기억하고 행동해 달라"는 외침에 무관심해질수록 피해는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세월호를 향한 우리의 흉터가 왜 아물지 않는가? 답은 하나다.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탓을 계속 무능한 국가와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들 자신도 결국 행동하고 연대해야 한다. 누군가 해결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론 안된다. 한국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지속해서 몰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함께 지켜봐야 한다. 다시 10년이 지났을 때 오늘과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나 역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만 꺼내본다.?김꽃비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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