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역사를 잊은 미래

@양지애 독립서점 및 독립출판사 대표 입력 2023.01.17. 16:56

"베를린이 언제부터 독일의 수도가 된 거야? 원래 본 아니야?"

2018년에 방영된 한 예능에서 소위 연예계 대표 엘리트 배우로 불리는 이서진은 말했다. 우리 학교 다닐 땐 다 본으로 배웠다고, 장벽이 언제 무너졌냐고. 1989년에 무너졌다는 제작진의 말에 '내가 89학번인데 어떻게 아냐'는 이서진의 정색은 예능으로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 장면을 보며 미처 웃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교육이란 이토록 강력하구나.

최근 확정된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관련해 연일 시끄럽다. 현행 교육과정과 달리 개정 교육과정은 '5·18민주화운동'을 포함한 여러 항목이 삭제되거나 간소화되거나 표현이 바뀌었고, 뒤늦은 뜨거운 논란에 교육부는 1월 4일 자로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주요 역사적 사건이 교과서에 기술되도록 하겠다는 설명 자료를 배포했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규탄이 이어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더 문제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2022년 11월 9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공개했다. 개정 교육과정에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경감하고, 교사들의 교육과정 재구성 자율권 제고를 위해 교육과정 대강화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대강화란 2007년 개정 교육과정부터 추진해 온 것으로 교과서 집필, 교실 수업 자율성 확대를 위해 국가교육과정의 서술 항목 및 내용을 간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2022 사회과 부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2018년 개정 교육과정의 129개 학습요소 중 27개 정도만이 반영돼 '일본군 위안부', '제주4·3사건', '5·18민주화운동', '남북정상회담' 등의 주요 사건들이 잘려 나갔다. 또한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 문서 내 서술 분량이 현행과 대비하여 축소된 것은 문서체계 변화에 따른 것으로 절대 의도적 누락이 아님을 설명 자료에서 추가로 명시했다. 그저 '교육과정 간소화 차원'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주정부가 고등학교 졸업 요건으로 역사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는 미국이나, 최근 선택과목으로 전환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역사가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큰 중국, 작년부터 세계사와 일본사를 통합해 '역사종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일본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비해 한국의 현행 교육과정에서 한국사는 고1 공통과목에 그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성적으로 점철된 시스템에서 비단 외면받는 과목이 한국사뿐이겠냐만 유독 우리나라는 역사교육이 홀대받는 실정이다.

물론 학생들은 교과과정만으로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다.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이고 여러 매체를 통해 자기만의 지식세계를 쌓아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어마어마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새도 없이 '역사 왜곡'과 같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자료사진에 북한특수군을 의미하는 '광수' 낙인을 마구잡이로 합성해 인터넷에 유포한 과정은 우스울 수 있으나 멋대로 기정사실화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결국 사진 속 '광수'를 찾아 일반시민임을 입증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2022년 8월 말부터 진행했던 국민참여 소통채널 대국민 공개, 공청회, 행정예고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거친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별도의 문제 제기는 없었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갈 일도, 단순한 문서체계라고 핑계 댈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

분명한 역사를 알고 배운 학생과 배우지 않은 학생은 어른이 됐을 때 다른 사람이 된다. 다가올 미래가 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극장가에서 한창 뜨겁게 상영되고 있는 영화 의 안중근 의사도 말하지 않았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새 교육과정은 2024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7년생,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중학교 1학년부터 2025년 중·고교에 연차 적용된다. 과연 그 학생들은 어떤 미래가 될까? 양지애 독립서점 및 독립출판사 '파종모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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