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어떤 산재들 : 청년여성노동자들의 일터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입력 2023.01.10. 13:32

지난해 3월 28일 임종린 전국화학식품섬유산업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SPC그룹의 불법행위·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이는 시민들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며 화두가 되고 있다. SPC의 노동착취 현안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청년여성 노동자들이다.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가 알려지며 모성권 보호와 같은 구호가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산재사망사고가 일어났던 SPC 평택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천158명으로 남성(729명)과 여성(429명)이 6 대 4 정도 된다. 하지만 제작환경이나 공정에서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은 없다. 기계설비도 신체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사고가 일어난 혼합기는 높이 105㎝, 가로세로 90㎝정도 크기다. 키가 160~165㎝쯤 되는 피해자는 가슴 높이의 혼합기 안에 직접 손을 넣어 소스를 젓는 작업 등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12시간 주야 맞교대, 2인 1조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은채로 인력이 부족한 근무환경과 안전교육설비가 없거나 부족했던 관행들이 맞물려 이러한 불행한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여성노동자가 다수 일하는 곳임을 고려하면 다른 규격의 기계설비나 자체적으로 안전성이 담보된 기계를 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타자 치고 커피 타고 수다 떨다가 손가락 골병들 확률이 더 높을까, 현장에서 넘어져서 멍들고 부러질 확률이 더 높을까?' 언젠가 여성노동자의 산재를 다룬 인터넷 기사 에 덧붙은 댓글이다.

나는 위 한 문장에 여성노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이 모두 집약돼 있다고 본다.어떤 산재는 은폐된다, 바로 '성폭력' 산재다. 통념적으로 산업재해를 말할 때 대부분 물리적 사고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성폭력 산재신청은 매년 낮지 않은 비율로 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직장내 성폭력으로 인한 산재 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1건이었던 성폭력 산재 신청은 지난해 53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6월까지 벌써 41건의 성폭력 산재 신청이 접수됐다. 2017년부터 지난해 6월 기준, 성폭력 산재 승인율은 평균 90.1%로 평균 50%대인 다른 업무상 질병 산재 승인율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높다.

성폭력 산재는 직장내 위계질서에 가장 취약한 청년노동자에게 집중돼 있다. 지난해 발생한 51건의 성폭력 업무상질병 산재신청 가운데 20대가 14건, 30대가 19건으로 절반을 웃돈다. 같은 기간 성폭력 산재 사망사건 2건 모두 20~30대에서 발생했다. 직장내 성폭력은 산재로 인정되지만,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재해 유형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실제로 발생하는 성폭력 산재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광주연극계 성폭력 사건과 같은 사례들처럼 프리랜서, 비정형 노동자들의 경우 더욱이 이를 산재로 인정받기도 어려우며 사건을 공론화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들,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은 너무 멀리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 14조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로 해당 사업주에게 사실을 신고할 수 있도록 돼 있으며 해당 피해자, 가해자에게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사업주라면? 오롯이 싸움의 몫은 피해자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에 더해 사전예방책으로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과 고충처리위원 설치 등이 있으나 이 또한 30인이상 사업장에게만 의무조항으로 작동한다. 10인 미만의 사업장의 경우 위의 예방책을 두는 의무에 예외를 두고 있다. 다른 노동문제들처럼 직장내 성희롱·성폭력에서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샘과 직장미투 사례에서 보여듯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등 직장내 성차별적 행위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후 상담지원센터 운영을 통한 피해자 정신건강 지원책을 마련하고 지지관계 형성을 위한 지역공동체 활동성화 정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

이보다 앞서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내에서의 성인지적인 진로와 취업지도·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진로 멘토링제도의 도입, 일 경험 프로그램 또는 인턴제 등에서 여성의 특성 고려해야 한다. 현행의 고용센터, 새일센터 등에서 청년여성 맞춤형 서비스 확충 등이 필요하다.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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