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도심 산업단지에 색깔을 입히니 생명력이 산다

입력 2022.11.09. 16:46 이삼섭 기자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④대구 이시아폴리스 문화예술테마거리
삭막한 공장 외벽에 15~20M 벽화 채워
“무미건조한 장소에 생동감 생겨” 호평
산단 많은 광주…공공미술 활성화 필
대구시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산업단지 내 한 공장외벽에 돌고래와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우리동네 미술, 공공미술 프로젝트' 탄생한 벽화 작품이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④대구 이시아폴리스 문화예술테마거리

"여기가 공장들만 있어서 삭막했는데 그림들이 많아져서 분위기가 전환된 것 같아요. 각 공장마다 그림이 있으니깐, 사람들이 무슨 그림 있는지 돌아다니기도 하고 저도 가끔 둘러보는 재미도 있어서 좋네요."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무채색의 산업단지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색이 입혀진 뒤 이곳 입주기업 근로자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흡족감을 드러냈다. 비록 극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삭막한 공장에 볼거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시아폴리스 문화예술테마거리'가 공공예술이 지역의 산업기반도 예술과 문화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단지 기능을 다한 곳이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하고는 있지만, 산업단지로서 한창 기능을 하고 있는 곳 또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다른 의미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면서다.

광주는 하남산단을 비롯해 평동, 본촌 등 산업단지가 도심 내에 즐비해 공공미술 등을 활용해 색다른 장소로 조성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산업단지 내 복합문화공간으로 성공 신화를 쓴 '소촌아트팩토리' 사례를 파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구시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산업단지 내 한 공장 벽화에 그려진 강아지가 보행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해당 작품은 '우리동네 미술,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행된 작품이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우리동네 공공미술 프로젝트 유일 공장지대

지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19로 전시, 공연 등 예술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위축되자 이들을 돕는 한편 일상 속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우리동네 미술,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공모했다. 전국 228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각 지역적 특색에 맞는 프로젝트를 공모했는데, 대구 동구는 전국 지자체 유일하게 프로젝트 대상지를 산업단지로 정했다.

지역주민들과의 접근성이 멀다는 비판에도 산업단지를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선정한 데는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산업단지와 예술의 '이질적' 만남때문이다. 공장들로 가득해 삭막하고 물류 등을 위해 대형 트럭들이 다니면서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는 산업단지는 시민들에게 가고 싶지 않은 대표적 장소다. 입주기업들의 근로자들조차 머물고 싶어하지 않은 '무관심 지역'인 산업단지야말로 '우리동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던 셈이다.

프로젝트는 팔공문화예술협회 등 지역 예술단체들과 지자체가 협업해 총 36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끝에 완성됐다. 각 공장별로 해바라기와 매화, 나비, 독수리, 백호 등의 벽화를 통해 17개의 작품이 탄생했다. 선사시대 유적지로 잘 알려진 단산유적공원에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포토존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영철 팔공문화예술협회 회장은 "공장하면 삭막하다는 이미지가 있고 실제 사람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며 "산업단지 옆에 공원이 있기 때문에 연계해 산업단지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사업 이후로 동네 주민들도, 어린이들도 와서 쭈욱 둘러보며 산책을 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시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산업단지와 연결되는 단산유적공원에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2021년 '우리동네 미술,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두 점의 조형물이 앞뒤로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근로자, 시민들 모두 "볼 게 생겨서 좋다"

지난 4일 찾은 이시아폴리스 문화예술테마거리. 단산유적공원 입구에서 마주한 '이시아폴리스' 영문자를 본뜬 조형물로 테마거리는 시작됐다. 이어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조형물 '이시아의 꿈'을 지나 본격 산업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둘 공장들 벽면을 덮은 벽화들이 보였다.

'꿈을 찾아가는 동·식물'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각 공장에는 강아지, 해바라기와 잠자리, 튤립, 꽃과 나비, 천사 날개, 아몬드 꽃, 독수리, 벚꽃과 나비, 미어캣, 기러기, 곰, 백호, 북극곰, 해바라기, 해바라기와 고래 등 15개의 작품들이 배치됐다. 무미건조한 산업단지는 동, 식물들로 인해 생명을 얻은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도로 안전 장비를 만드는 제조업체의 한 40대 직원은 "이곳이 워낙 삭막했는데 그림들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전환됐다. 이쁘고 좋다"며 만족해했다. 또 다른 20대 남성 근로자는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분명히 작품들로 인해 주변이 밝아졌다"며 "흉물만 아니라면, 이런 그림들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이 같은 변화를 반겼다. 이곳에 산책 나왔다는 한 주민은 "그림을 따라 산업단지를 걷곤 한다"면서 "작품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50대 택시기사는 "여기를 지나다니면서 한번씩 보게 된다. 삭막하고 볼 게 없었던 곳에 생기니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구 동구청 관계자는 "공장이 주로 있는 황무지와도 같은 곳에 미술작품들이 있으니 인근 주민들이 길거리 미술관처럼 돼 있는 것 같다고 만족해 하신다"며 "무엇보다 (작품들이) 단산유적공원과 산업단지가 연결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어 산책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도시 광주, 산단 즐비…공공미술 도입 필요

산업단지 내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산업단지가 많은 광주에 중요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는 본촌·송암, 하남, 소촌, 평동, 첨단·빛그린·에너지밸리산업단지 등의 산업단지가 있다. 이들 산업단지는 광주의 경제 버팀목임에도 불구하고 직주분리로 인해 대부분 근로의 장소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풍경 대신 공장의 외벽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나 획일적 경관으로 인해 보행 등이 꺼려지는 장소로 인식된다.

특히 노후산단의 경우 기반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주차장과 대중교통의 부족으로 차량들이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거기에 더해 수없이 많은 화물차가 이동하고 소음도 심해 입주 근로자조차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광주는 하남산단, 본촌산단 등 노후산단이 특히 많다. 이시아폴리스산업단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주목 받는 이유다.

이미 정부는 전국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활력 있고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본촌산단과 소촌산단이 선정돼 2023년까지 사업을 완료한다. 사업지로 선정된 두 산업단지는 벽화 등 공공미술도 활용할 예정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벽화나 조형물과 같은 공공미술도 도입돼 시민들이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 소촌산업단지에 위치한 소촌아트팩토리전경. 소촌아트팩토리는 오래된 산단의 공동 단지가 예술촌으로 거듭난 도시재생의 대표적 사례다. 무등일보DB

◆'문화공장' 굳힌 소촌산단…"관건은 파급"

이미 광주에는 소촌산단이 '소촌아트팩토리'를 위시해 공공미술을 넘어 하나의 복합예술문화 산업단지로 자리매김했다. 소촌산단 내 소촌아트팩토리는 소촌농공단지의 산업단지운영협의회가 사무실로 쓰던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컨테이너로 미술관을 만들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촌아트팩토리는 유노윤호 팬들이 기증한 책으로 채워진 '유노윤호 도서관', 아르코공연연습센터, 카페 등이 있다. 특히 인근 공장 외벽에는 미디어파사드 공연도 선보이고 있다. 2020년에는 '산단비엔날레'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자녀인 문준용 작가가 참여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소촌산단이 이번 사업으로 인한 기대감이 큰 이유다. 광산구는 소촌산단에 문화·예술을 가미한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특화 디자인을 활용한 벽화와 정원, 거점별 '스팟(spot)' 문화공간, '팝업(pop-up)' 놀이터, 미디어 아트존 등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파급. 소촌아트팩토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촌산단 대부분은 삭막한 노후산단 모습 그대로다. 하남산단 등 다른 광주지역 산업단지에도 영향을 주지도 못한 모양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성공한 소촌아트팩토리와 이시아폴리스 산업단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사례가 중요한 이유다.

김병헌 소촌아트팩토리 센터장은 "내년부터 소촌아트팩토리 진입로에 상징적인 조형물과 같은 공공미술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며 "사업이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얻는다면 많은 산업단지가 공공미술을 도입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센터장은 "산업단지는 공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나 주민들을 위한 공공 서비스를 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이 필요하다"며 "다만 산업단지가 굉장히 넓고 많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김 센터장은 "무엇보다 공공미술은 일방적으로 할 게 아니라 노동자, 주민, 기업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수요를 파악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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