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선박 수리 1번지 마을서, 예술 가득한 '보물섬'이 되다

입력 2022.10.26. 11:14 이삼섭 기자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③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다른 곳으로 나간 조선소 빈자리
빈집 늘면서 쇠락한 구도심 모습
'예술마을 사업단' 만들어 밑그림
지역 특색 살린 '오감형' 콘텐츠
마을 역사 맞게 공공 예술품 설치
옛 모습 건물과 공공 미술의 조화
깡깡이 마을 내 부품사가 모인 골목골목이 다양한 색깔로 채색돼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③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부산 영도 '깡깡이 마을'은 '조선 수리 마을'의 정체성을 살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대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중심은 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40여점에 이르는 예술작품들이다. 이에 더해 지역적 특색을 살린 '오감형' 콘텐츠는 도시재생 사례의 모범으로 꼽힌다. 특히 수십년 같은 자리를 지킨 전통찻집만을 위해 깡깡이 마을을 찾는 이들이 많아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수의 주민들과는 거리감 있는 도시재생의 모습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대다수 구도심에서 발생하는 보존 중심의 도시재생보다는 재개발 중심의 도시재생을 원하는 지역민의 바람은 깊은 고민거리를 남기고 있다.

◆조선 수리업 호황 뒤 남겨진 그늘

깡! 깡! 깡! 배 표면에 녹이 슨 페인트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떼어낼 때 나는 소리는 부산 영도 깡깡이 마을에 오래도록 스며들었다. 이 소리에서 따와 '깡깡이 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진 부산 영도 대평동은 선박 수리 1번지이자 성지로 불린다. 19세기 후반 국내 최초로 근대식 목선 조선소인 다나카조선소가 세워진 후 산업화 시기, 원양어선 붐을 타고 생긴 수많은 원양어선들이 선박을 수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선박이 정박하면서 덩달아 요식업, 숙박업을 비롯해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수많은 부품사들도 모여들었다. 한때 동네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이곳은 높았던 명성만큼이나 그늘 또한 길었다. 1980년대 원양어선의 대형화와 원정 수리 기술 발달, 부산과 경남 여러 곳으로 조선소들이 빠져나가면서 옛 명성이 희미해져 갔다.

조선소들도 작은 업체만 남게 되고 부품업소와 일거리 또한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빈집이 늘어나면서 전형적인 쇠락한 구도심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깡깡이 마을에는 선박 수리의 역사와 명성, 조선사, 수백여개의 부품사와 종사자들, 이곳을 지켜온 주민들과 상인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단지, 현대에 맞는 재해석할 시점이 다가왔을 뿐이다. 때마침 구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이 떠오르고 있었다. 전면 철거 후 재개발 방식에 대한 회의감과 맞물려 문화예술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부산 감천마을이 부산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며, 깡깡이 마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안쓰는 선박 자재를 이용해 마을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벤치를 만들어 놓은 모습.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문화예술로 공간을 재해석하다

관건은 상상력. 부산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전문가 집단 '문화예술 플랜비'는 민간단체, 예술가, 지역주민, 지자체가 협업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상상했다. 이들은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을 만들어 논의를 시작했다. 약 6개월간 마을 조사, 마을의 수리조선업 역사, 현황 등을 통해 밑그림을 그려 탄생한 게 지금의 '깡깡이 예술마을'이다.

깡깡이예술마을단은 "깡깡이예술마을은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을 통해 항구도시 부산의 원형을 되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는 여러 단계로 진행됐는데 우선적으로 예술가들이 마을 역사성, 장소성에 맞게 공공예술품을 곳곳에 설치했다. 또 거점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하는 마을공작소, 생활문화센터를 비롯해 마을투어, 유람선 체험, 선박체험관 등 다양한 체험 공간을 마련해 방문객과 마을을 연결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에서 공동체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게 마을공작소. 지역주민과 일상, 문화예술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지역공동체 거점공간이자 생활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플랜비 측은 "주민, 예술가, 행정가 등 다양한 주체가 만나 문화예술로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깡깡이예술마을 조성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임을 알리는 조형물. 버려진 닻을 사용해 마을의 지역성을 드러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마을 곳곳에 숨겨진 '보물찾기'

실제 기자가 찾은 깡깡이예술마을은 예술가들과 전문가들, 마을주민들이 수년간 이뤄낸 결과들로 가득했다.

예술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 초입부터 갖가지 조형물들과 공공미술들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페인팅 아트, 키네틱아트 등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조선업의 역사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특히 흔하게 보이는 공공미술이 아닌,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소리, 빛, 색채 등 다양한 매체와 요소를 활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여전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과 공공 미술과의 조화는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까지도 들었다.

버려진 닻으로 만든 조형물은 이곳이 조선소 마을이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드러내줬다. 동네를 거닐며 벽마다 보이는 알록달록한 벽화는 무채색의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골목골목 구름 모양의 가로등, 그물을 형상화한 LED 가로등은 노동자들이 집에 간 후 남겨지는 삭막한 풍경을 걷고 싶은 거리로 바꿨다. 나이가 많은 주민들을 위한 벤치가 눈에 띄었는데, 버려진 농이나 닻을 가져다 만들어 특색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1980년대 지어진 12층 규모의 대동대교맨션 한쪽 벽면에 그려진 초대형 벽화인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이 마을의 상징이다. 아찔하게 줄에 매달려 선박 벽면을 망치질하던 평범한 여성이자, 어머니를 모티브로 그린 벽화는 지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날 이곳을 방문한 김진주(27)씨는 "도시재생을 한 곳을 돌아다녀 보면 뻔한 벽화나 조형물, 지역과 상관없는 콘텐츠들로 채워져 있어 특색 있다고 느끼기 힘들었는데 이곳은 지역 특징을 잘 살린 것 같다"며 "마을을 돌아다니면 뭔가 새로운 것들이 나올 것 같아 계속 걷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지역적 특색을 살린 '오감형' 콘텐츠는 도시재생 사례의 모범으로 꼽힌다. 해설사를 통한 마을투어뿐만 아니라, 항구도시라는 특성을 살린 해상투어, 선박체험관 등 체험 프로그램은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만족감을 높이고 있다.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내 대표적 장소인 '양다방'을 운영하는 이미애 사장이 가게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가게 하나가 마을 하나 먹여 살려"

특히 이 마을의 명소인 '양다방'은 킬러콘텐츠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부터 운영했다는 양다방은 깡깡이 마을을 찾는 이들이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다. 전통 방식의 쌍화차를 파는 양다방은 처음 가게 구조와 장식 등을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잡지 촬영부터 시작해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 등의 주된 단골 촬영 장소가 되면서 양다방을 찾기 위해 깡깡이 마을을 찾는 곳이 됐다.

특히 2030세대의 젊은이들에게는 '핫 플레이스'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양다방 사장 이미애씨는 "한 때 양다방 하면 택시기사들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했다. 지금도 단골들을 보면 40년, 50년씩 온 사람들"이라며 "지금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촬영하러 오고 유명 연예인, 정치인들도 자주 찾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스페인의 한 잡지사도 방문해 촬영을 마쳤다고 덧붙였다.

이어 "양다방처럼 오래된 가게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자산"이라며 소중히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가게가 마을 하나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예술마을 하나는 부산을 넘어 국가의 자산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개발과 보존 사이… 주민들 '입장차'

그러나 깡깡이예술마을이라고 해서 도시재생 사업지에서 발생하는 문제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특히 도시재생 운영 주체와 주민들 사이의 소통 문제도 제기된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사업단에서)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한데 주민들을 위해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벤치에 쉬고 있던 70대 여성은 "사람들 많이 오기는 하고, 달라진 게 있는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다"며 "외지인들이 와서 상권이 활성화 된다거나 하면 좋은데 전혀 그런게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주민들 또한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곳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중개사는 "홍보를 해야 외지에서 들어오는데 홍보가 잘 안되는것 같다. 매스컴에서 한번씩은 나오는 것 같은데 그 순간인 것 같다"면서도 "진짜 주민들에게 와닿을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해줘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

특히 이 중개사는 "주민들 중에서는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이들은 주택 가격이 오르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며 도시재생보다는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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