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조지아를 찾은 러시아 작가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1)
겨울나무
거친 눈이 내리는 밤
길을 걷는다
세찬 바람에 눈을 뜰 수 없다
휘몰아치는 폭설에
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흔들린다
사람들은 옷깃을 부여잡고 황급히 길을 걷는다
그러나 나무
거친 눈발에도 검은 몸을
온통 드러낸채
침묵으로 서있다
생명
그 모습은 생명이었다
냉소하고 가볍고 요란하고 할퀴는 삶이 아닌
대지에 뿌리를 박고
묵묵히 서 있는 그의 모습
눈 내리는 밤
나는 오랫동안 길을 걷지 못하고
나무 곁에 서 있었다
나무를 닮아가고 싶었다
나무가 되고 싶었다 (한희원 )
어느 유행가 가사에서 인생을 나그네길이라고 한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이 노랫말이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부초처럼 떠도는 생의 시간을 나그네는 홀로 걷는다. 말동무가 있어 무리를 지어 가는 사람을 나그네라 부르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 길 위에 선 이를 나그네라 명명한다. 혼자 걷는 길은 성찰하는 시간도 되지만 외로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야 친구 없이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경한 곳을 홀로 여행하거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어렵게 된다. 혹독한 외로움을 몸이 체득해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까운 친구가 작별인사도 없이 먼 길을 떠나고, 친분을 유지했던 이들마저 곁에 오지 않고 나 또한 찾아가지 않으면 외로움의 농도는 더 짙어진다.
스님들은 몇 달간의 동안거를 마치면 세상에 나와 떠돈다. 세상에서 겪은 일들은 혼자만의 성찰을 넘어 더 깊은 삶으로 합류하는 과정이다. 정처 없이 걸으며 떠돌면 방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방황의 최고의 사치는 여행이다.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갇혀있는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보는 일이다. 새로움을 만났을 때 삶의 결은 더욱 깊어지고 시야도 확장된다. 그래서인지 예술가의 여행은 좀 더 특별하다. 낯선 곳에서는 작품도 새로움을 흡수하며 변화한다. 내면의 감옥에서 벗어나 또 다른 영혼을 만나 개화한다.
폴 고갱은 증권 중개사로 일을 하다 화가 생활을 결심한 후 원시의 섬 타히티로 떠나 찬란한 생명을 일깨워주는 색채의 작품을 그렸다. 수화 김환기는 가장 무르익던 시절에 홀연히 뉴욕으로 떠나 극심한 외로움과 투쟁하며 명작인 점화를 탄생시켰다. 많은 예술가들이 여행을 하거나 새로운 환경 속에서 변화된 작품을 선보인다. 근현대에 들어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나 뉴욕으로 간 후 자신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꽃피웠다.
예술가들은 동경하는 곳에서 새로운 문물을 경험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코카서스의 고산이 가로지르는 조지아도 그런 곳이리라. 사계절이 뚜렷하고 해발 5,000m가 넘는 코카서스 산맥의 눈 덮인 고봉.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강이 허허로운 들녘을 넘어 도시를 가로지르는 나라 조지아. 봄여름은 따뜻하고 가을은 신선한 공기가 짜릿하며, 산언덕에 만추로 변한 나무는 마음을 흔든다. 겨울 산악지역은 눈보라 속에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다. 그러나 동토의 땅 시베리아의 혹한은 더 심하다. 시인 윤동주는 한 번도 가지 않은 코카서스를 이렇게 되뇌기도 했다.
간(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들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혹독한 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러시아 작가들에게 조지아는 영혼의 안식을 주는 이상향이었으리라. 국경을 가로지르는 첩첩 고산을 넘으면 와인과 따뜻함이 반기는 나라.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작가들은 젊은 시절에 조지아로 넘어와 생활하며 작품을 썼다. 어느 작가는 도피처로, 어떤 이는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 한국의 소설가 이태준, 이기영, 시인 이찬도 1945년 해방직후 조지아를 방문했다. 앙드레 지드는 고리키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트빌리시와 스탈린의 고향 고리를 찾았다. 조지아를 찾은 이들은 어떠했을까?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