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우울함 속에도 잃지 않은 자유로움과 열정의 예술세계

입력 2021.01.07. 19:25 김혜진 기자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57>니코 피로스마니와 엘렌 아크블레디아니
한희원 작 '겨울 우쉬굴리 가는 길'

밤늦은 시간

시장 입구 낡은 술집에 앉아

막걸리 몇 잔을 들이킨다

내 옆에 사내 혼자

독한 소주를 비운다

천장에 매달린 오래된 전등 불빛이

안주도 없는 쓴 술잔에 부딪혀 떠나간다

불빛이 흰 빛으로 내려온다

드러난 뼈다

창밖에 비가 무던히도 내린다

내리는 눈만큼 세월이 사내의 어깨 위에 내린다

긴 침묵이 어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독한 소주의 슬픔 언제부턴가 내 곁에 서 있다

때 묻은 술잔에 눈 몇 송이 잠겨있다

막걸리 몇 잔 들이킨다, 속이 쓰리고 차다

안주는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

세상은 깊은 고요에 잠겨있다

내 눈 속에 사내의 모습이 멀어진다

낮은 生이 걸어가고 있다

벽에 걸린 시간이 말도 없이 떠나간다

골목길 끝에 걸린

사내의 짙은 그림자

각혈의 꽃으로 박힌다

드러난 뼈다

눈이 밤이 깊도록 환장하게 내린다

속도 모르고

(한희원의 시 '드러난 뼈' 전문)

엘렌 아크블레디아니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격렬하게 소리치다가 일순간 모든 감각이 정지되면서 서서히 저음으로 스며든다. 이 음악처럼 인생은 떠돌이별처럼 오고 가며 스치는 인연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맞으며 수많은 회한의 흔적을 남긴다.

바이올린 소리가 점점 더 격렬해지며 심장 가장자리로 엄습해 온다. 우리들의 생의 연주도 이와 비슷하다. 어느 연주자가 어떤 악기로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들으면 영혼이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눈 덮인 겨울 들녘처럼 차갑지만 따뜻해진다. 영혼이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하면서 따뜻한 경우는 맑고 안정된 마음의 상태임을 말한다. 바흐 음악은 우리를 이렇게 속살거리며 인도한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들으면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네 악기가 자기만의 소리를 내며 불협화음을 이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악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몰입하면 신기할 만큼 아름다움의 절정에 도달하며 화음을 이룬다, 이 곡은 베토벤의 말년 작으로 귀가 먹은 후 세상의 소리를 오랫동안 듣지 못한 베토벤의 마음의 소리만 남은 것 같다. 우리가 가는 수많은 길들이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듯 자기만의 길을 가면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풍경이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끝없이 자기만의 언어로 떠드는 우리들처럼.

오늘 들은 바이올린 곡은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몰도바(Moldova)'이다. 세르게이 트로파노프는 1861년 구 소비에트연방인 몰도바공화국에서 태어났다. 몰도바는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조지아와는 흑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와인으로도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 나라다. 몰도바는 집시의 애환을 담은 바이올린 곡이다. 집시음악은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허무함이 내재되어 있다. 불꽃같은 생을 음악으로 분출하면서 쓸쓸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 민요 아리랑의 한의 정서와 비슷하지만 자유에 대한 거친 열망이 느껴져 감정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엘렌 아크블레디아니 작 '트빌리시 겨울풍경'

조지아의 예술세계에서도 이런 감성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기독교 정신이 깃들어 있어 엄숙하면서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강대국에 대항하는 격한 저항의식이 곳곳에 묻어 있다. 트빌리시 올드타운 지하철 역 작은 광장에서 펼쳐지는 시민들의 춤의 향연을 보면 그들의 춤이 얼마나 격렬하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작업실에 앉아 니코 피로스마니의 그림과 엘렌 아크블레디아니의 그림을 바라본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짙은 검회색의 색상 속에 단순하게 들어 있는 붉은색과 흰색이 거칠지만 깊다. 우울함 속에서도 자유로움과 열정을 잃지 않고 있다. 아마 이런 그림의 유형은 조지아의 역사와 민족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림으로 표현된 감성의 교류가 그를 조지아의 국민화가로 추앙받게 한 요인일 것이다. 단순히 피로스마니의 슬픈 사랑 이야기만으로 그런 국민화가라는 위치가 가능하겠는가.

엘렌 아크블레디아니의 그림에서도 횟빛 붉은 황토와 낮은 채도의 색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녀의 그림 대부분이 조지아의 도시와 마을, 산하의 풍경이다. 아름다움을 감춘 우울함이 깊게 배어 있다. 내가 그 풍경 속을 거닐고 있다.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 속을 거니는 것이 참 좋다. 화가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지금 그 풍경 속을 거닐 수 있어서 행운이다. 어쩌면 나도 신화 속의 한 사람이리라.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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