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니코 피로스마니와 엘렌 아크블레디아니
밤늦은 시간
시장 입구 낡은 술집에 앉아
막걸리 몇 잔을 들이킨다
내 옆에 사내 혼자
독한 소주를 비운다
천장에 매달린 오래된 전등 불빛이
안주도 없는 쓴 술잔에 부딪혀 떠나간다
불빛이 흰 빛으로 내려온다
드러난 뼈다
창밖에 비가 무던히도 내린다
내리는 눈만큼 세월이 사내의 어깨 위에 내린다
긴 침묵이 어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독한 소주의 슬픔 언제부턴가 내 곁에 서 있다
때 묻은 술잔에 눈 몇 송이 잠겨있다
막걸리 몇 잔 들이킨다, 속이 쓰리고 차다
안주는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
세상은 깊은 고요에 잠겨있다
내 눈 속에 사내의 모습이 멀어진다
낮은 生이 걸어가고 있다
벽에 걸린 시간이 말도 없이 떠나간다
골목길 끝에 걸린
사내의 짙은 그림자
각혈의 꽃으로 박힌다
드러난 뼈다
눈이 밤이 깊도록 환장하게 내린다
속도 모르고
(한희원의 시 '드러난 뼈' 전문)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격렬하게 소리치다가 일순간 모든 감각이 정지되면서 서서히 저음으로 스며든다. 이 음악처럼 인생은 떠돌이별처럼 오고 가며 스치는 인연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맞으며 수많은 회한의 흔적을 남긴다.
바이올린 소리가 점점 더 격렬해지며 심장 가장자리로 엄습해 온다. 우리들의 생의 연주도 이와 비슷하다. 어느 연주자가 어떤 악기로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들으면 영혼이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눈 덮인 겨울 들녘처럼 차갑지만 따뜻해진다. 영혼이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하면서 따뜻한 경우는 맑고 안정된 마음의 상태임을 말한다. 바흐 음악은 우리를 이렇게 속살거리며 인도한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들으면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네 악기가 자기만의 소리를 내며 불협화음을 이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악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몰입하면 신기할 만큼 아름다움의 절정에 도달하며 화음을 이룬다, 이 곡은 베토벤의 말년 작으로 귀가 먹은 후 세상의 소리를 오랫동안 듣지 못한 베토벤의 마음의 소리만 남은 것 같다. 우리가 가는 수많은 길들이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듯 자기만의 길을 가면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풍경이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끝없이 자기만의 언어로 떠드는 우리들처럼.
오늘 들은 바이올린 곡은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몰도바(Moldova)'이다. 세르게이 트로파노프는 1861년 구 소비에트연방인 몰도바공화국에서 태어났다. 몰도바는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조지아와는 흑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와인으로도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 나라다. 몰도바는 집시의 애환을 담은 바이올린 곡이다. 집시음악은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허무함이 내재되어 있다. 불꽃같은 생을 음악으로 분출하면서 쓸쓸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 민요 아리랑의 한의 정서와 비슷하지만 자유에 대한 거친 열망이 느껴져 감정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조지아의 예술세계에서도 이런 감성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기독교 정신이 깃들어 있어 엄숙하면서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강대국에 대항하는 격한 저항의식이 곳곳에 묻어 있다. 트빌리시 올드타운 지하철 역 작은 광장에서 펼쳐지는 시민들의 춤의 향연을 보면 그들의 춤이 얼마나 격렬하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작업실에 앉아 니코 피로스마니의 그림과 엘렌 아크블레디아니의 그림을 바라본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짙은 검회색의 색상 속에 단순하게 들어 있는 붉은색과 흰색이 거칠지만 깊다. 우울함 속에서도 자유로움과 열정을 잃지 않고 있다. 아마 이런 그림의 유형은 조지아의 역사와 민족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림으로 표현된 감성의 교류가 그를 조지아의 국민화가로 추앙받게 한 요인일 것이다. 단순히 피로스마니의 슬픈 사랑 이야기만으로 그런 국민화가라는 위치가 가능하겠는가.
엘렌 아크블레디아니의 그림에서도 횟빛 붉은 황토와 낮은 채도의 색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녀의 그림 대부분이 조지아의 도시와 마을, 산하의 풍경이다. 아름다움을 감춘 우울함이 깊게 배어 있다. 내가 그 풍경 속을 거닐고 있다.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 속을 거니는 것이 참 좋다. 화가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지금 그 풍경 속을 거닐 수 있어서 행운이다. 어쩌면 나도 신화 속의 한 사람이리라.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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