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비가 오려는가
좀처럼 보이지 않던
까치 울음소리가 크다
봄의 빈틈을 파고드는
횟빛 비수가 새의 가슴을 찌르는가 보다
깊숙한 대지의 움직임을
하찮은 미생물이 먼저 안다
욕망은 노래를 잃고 시를 잃게 한다
대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외면하고 그의 예시를 알지 못한다
빗방울이 언뜻 떨어지지만
새들은 나무 사이를 오간다
햇빛이 없어도 푸른빛이 난사된다
체리꽃이 언제나 다시 피려나
가슴에 심은 체리꽃
찔레꽃 닮은
그 무성한 하얀 꽃잎
비가 오는데도 눈부시다
(한희원)
조지아의 들녘은 한 편의 잘 짜여 진 교향곡 같다. 어떤 때는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가 또 어느 날은 걷잡을 수 없는 울림으로 찾아온다. 봄이 오면 조지아의 들녘은 눈부신 하얀 체리 꽃으로 몸살을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체리 꽃은 가을날의 사시나무처럼 떨며 연둣빛 나무와 풀잎 사이를 떠돈다.
조지아는 국토가 작은 나라이지만 산악지역이 많아 광활한 들녘이 곳곳에서 몸을 드러낸다. 도시를 빠져나오면 끝이 없을 것 같은 들녘과 만나게 된다. 긴 몸매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언덕. 그 너머에는 구름이 방황하는 영혼들을 끌어모아 행렬을 이루어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내 영혼도 구름 한편에 머물며 걷고 있음을 느낀다.
언덕 아래에는 어김없이 강이 흐른다. 강가의 큰 나무 아래에 앉아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구름도, 언덕도, 바람도, 세월도 덧없이 흐른다. 그러다가 흐르던 모든 것이 멈추면 내 시간 앞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을 나를 생각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멈춰진 나의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대학시절에 검붉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폭우가 내리기 전,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날을 좋아했다. 그런 날에는 마음의 동요를 이겨내지 못하고 화구를 챙겨 집 근처로 나갔다. 근처 억센 풀이 돋아난 황량한 들녘에 앉아 바람에 휘몰아치는 황토 언덕과 나무를 그렸다. 정신없이 그리다 보면 어김없이 폭우가 내렸다. 세찬 비를 맞으며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온몸은 물에 빠진 생쥐마냥 흠뻑 젖은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예전의 그런 감성이 그립다. 그런 날이 더 그립다.
트빌리시에서는 갑자기 돌풍이 부는 날이 많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고요한 침묵의 날인데 순식간에 강한 돌풍이 몰아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돌풍은 낡은 간판이며 견고하지 못한 구조물들을 거리로 내동댕이친다. 이곳은 높은 산악지형과 바람막이조차 없는 들녘이 이어져 있어 거센 바람이 횡행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여행자들은 바람이 부는 날 바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트빌리시에서 한 시간 남짓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들녘이 아닌 높은 산을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이 텔라비이다. 텔라비는 시그나기와 함께 와인 주 생산지인 카헤티 지방의 가장 중요한 마을이다. 보통 일반 관광객들은 가지 않는 곳이지만 조지아 마을 중에서 꽤 인상적인 곳이다. 트빌리시에서 텔라비로 가려면 울창한 나무숲을 한참동안 헤치고 가야 하는 산길이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무성한 숲을 지나면 갑자기 확 트인 지평선이 보인다. 이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 정상이다. 산 정상을 넘어가면 산 중턱에 큰 나무가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커피숍이 있어 외로웠던 여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곳으로 사람은 드물지만 나그네 몇 명이 나무 의자에 앉아 겹겹이 누워있는 산 능선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이국의 땅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이런 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다. 모든 그리움을 가슴으로 마시는 것이다. 나도 나무 아래에 앉아 그리운 땅, 그리운 사람들을 섞은 커피를 마셨다.
이 산을 지나면 알 수 없는 마을 텔라비가 나온다. 그곳 사람들의 눈빛은 어떠할까? 마을은, 집은, 나무는, 그곳의 바람은……. 뜨거운 커피의 여운을 안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바람이 미는 대로 텔라비로 향해 간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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