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 땅 일구는 농부들…"벼농사로 ESG 동행을"

입력 2023.10.12. 16:47 이윤주 기자
'기후위기시대 전남, 미래를 일군다'
⑤땅을 지키는 사람들…농부들의 고군분투
코로나 팬데믹에 충격 근본으로
흙 살리는 무경운농법에 도전장
친환경에 저비용 탄소저감까지
미생물 되살려 건강한 농사짓기
적합한 농기계 개발에 '온힘'
"무경운 농사 지속·확산 동참을"
곡성군농민회 '탄소정의농사위원회'는 흙을 살려 자연과 가장 가까운 먹거리로 세상을 채워나가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은 탄소정의농사위원회 김현인 위원장이 무경운으로 재배 중인 벼를 살펴보고 있다. 

'기후위기시대 전남, 미래를 일군다' ⑤땅을 지키는 사람들…농부들의 고군분투 

흙을 살려 자연과 가장 가까운 먹거리로 세상을 채워나가고자 고군분투하는 농부들이 있다. 농약도, 비료도 없이 수십년 친환경 농사에 매달려온 그들이 이제는 그저 물로만 벼농사를 짓겠다고 나섰다. 올해로 3년째 무경운농법에 도전하고 있는 곡성군농민회 탄소정의농사위원회가 그들이다.

온갖 첨단기술로 기후위기 대응에 분주한 21세기에, 오롯이 '자연 그대로' 생명력을 길러내는 것이야 말로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무너진 면역체계를 살리자

곡성군농민회 '탄소정의농사위원회'는 규모가 단출하다. 옥과면 김현인 농민을 중심으로 죽곡면 조해석·박기범 농민 등 10여명 남짓이다. 적게는 50대에서 많게는 70대까지 모두 수십년 곡성에 뿌리를 내리고 농사를 지어온 이들이 '탄소정의농사위원회'로 뭉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다.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유기농사를 지어온 김현인 농부는 벼 도열병이나 탄저병 같은 병해충이 매년 늘어나는 것을 보며 면역체계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커져가던 중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강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는 "생태계에서 가장 멀리 있으면서 가장 폭넓게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고 여겨온 사람까지 바이러스로 팬데믹을 겪는 것을 보고 이제는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2020년에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 마저도 중단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나섰다"고 말했다.

고민끝에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무경운 농법'이었다. 각종 생명체들의 터전인 땅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무경운 농법을 통해 무너진 면역체계를 되살려보자는 것이었다. 또 농사를 이유로 땅을 파헤치지 않고 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땅의 습성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것도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현인 농민은 2021년 초 곡성군농민회 총회에서 회원들을 설득해 무경운 농법으로 벼농사 짓기를 제안했고 우여곡절끝에 그해 6월19일 그를 포함해 4명의 농민들이 '탄소중립 무경운 모내기'를 시작으로 무경운 벼농사에 나섰다. 생태계 보호와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곡성 무경운농법

◆희망이 보인다

보통의 농사는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고 퇴비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법이 주를 이룬다. 특히 100% 기계화된 벼농사는 2~3t 무게의 트랙터 사용을 반복하다 보면 작물이 크는 작토층(지표에서 20~30㎝)를 제외하고 그 아래는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는다. 땅 깊숙이 뿌리가 뻗어나갈 수도 없고, 작은 미생물도 살 수 없다. 척박해진 땅에 농사를 짓기 위해 매년 복토와 화학비료를 해야하는 부작용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무경운농법은 땅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그대로 미생물을 되살려 힘을 길러낸 땅에서 농사를 짓자는 것이다.

먼저 겨우내 곡식을 거둔 땅에 그루터기를 그대로 두거나 자생하는 식물들을 없애지 않는 방식으로 일종의 자연멀칭을 시킨다. 경운이나 로타리 없이 모를 심기 전 그동안 굳어있던 땅을 연화시키기 위해 물데기를 한다. 모를 심은 후에는 우렁이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전부다. 병해충 방제도 없다. 수확할때까지 벼가 자라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이곳 농민들이 무경운농법을 시도하며 가장 걱정한 것은 물데기였다. '자연 그대로'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는데 관행농법에 비해 물을 많이 사용할 경우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첫 해인 2021년에는 모내기 전 한달 가까이 물데기를 했다. 이듬해인 2022년 물데기를 2주로 단축시켰고, 3년째인 올해는 1주만으로도 모내기를 무리없이 했다.

물데기 못지 않게 신경쓰였던 것은 수확량이다. 비료도 쓰지 않은데다 잡초나 병해충 제거를 위한 방제도 없어 혹여 낟알이 제대로 들어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농부들이 무경운농법에 뛰어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품질과 수확량이다. 생업이 달린 일이라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김현인 농부는 무경운 농사 첫해 수확량 검사를 의뢰한 결과 10%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 농사를 지은 조해석, 박기범, 이광수 농부 모두 적게는 5%에서 10% 많은 수확을 거뒀다.

오랜 농사경험이 가장 큰 밑거름이었겠지만, 이들이 첫 해 거둬들인 결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무경운 농법의 가능성을 확인한 '희망'이었다.

조해석 농민은 "특별하게 키운 벼인데, 일반벼와 똑같이 수매하고 싶지 않아 별도의 가격의 결정해 주위에 판매했지만 아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기대에 못 미쳤다"며 "그래도 의미있는 첫 수확이라 광주고려인마을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전은 계속된다

물데기와 수확량의 우려를 씻어낸 이들은 매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다양한 품종으로 농사짓기다. 첫 해 '사이노'에 이어 이듬해에는 '강대찬'으로 농사를 지었고 올해는 '사이노' '백세미'와 함께 토종 종자인 '북흑조'와 '보리벼'에 도전했다. 다양한 품종을 심어 무경운농법에 보다 적합한 것들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는 미생물 실험도 병행하고 있다. 원활한 모내기를 위해 땅에 남아있는 벼 그루터기를 부숙시키기 위한 락토균 배양액을 살포했다.

면적과 참여인원도 늘었다.

2021년 4농가 2천평으로 시작해 2022년 3농가 2천평에서 올해는 9농가가 참여해 6천평으로 무경운 벼농사를 짓고 있다. 당초 12농가가 참여하고자 했으나 따로 떼어낼 수 없는 농지 여건상 3농가는 포기해야만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들에게 무경운은 '더할나위 없는 농법'으로 점점 더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농사의 근본인 땅을 살리고, 노동력이 절감되며 무엇보다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인 농부는 "여전히 많은 농부들이 주저하고 있지만, 적은 비용, 높은 생산성 그리고 건강한 먹거리와 탄소배출저감까지 전지구적으로 나서야할 농법이다"는 주장이다.

이들에게 남은 과제는 무경운에 적합한 농기계 개발이다.

기존 무경운 이양기의 경우 뜬모가 많아 첫 해 다시 수작업으로 모내기를 해야했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현재 모심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식부침 개발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모를 심을 지점을 깊숙이 파고 들어 그곳에 모를 정확히 심기 위한 기능이 필요하다.

중고 이앙기를 구입해 기본설계에 나선 상태다. 기본설계가 마무리되면 특허출원을 거쳐 농기계 제작까지 시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곡성 벼 

◆"전 지구적으로 나서야할 농법"

무경운 농법은 탄소를 줄이는 대표적인 농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농작물은 광합성을 통해 땅 속에 탄소를 저장하는데 논밭을 갈아 엎으면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탄소를 다시 배출하게 된다. 무경운은 이를 방지할 수 있다. 또 농작물 잔재를 퇴비를 이용하는 것도 잔재에 남아있는 탄소를 토양에 흡수시킬 수 있어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꼽힌다.

김현인 농부는 "경운에서 발생하는 소음, 진동, 마찰열은 미생물 개체수를 줄이고 미생물의 생태계를 훼손시키는 부작용이 크다"며 "무경운은 온전한 환경에서 거름기를 흡수하고 내변성을 강하게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작물 가운데 김현인 농부가 벼를 선택한 것은 벼농사 자체가 기후위기 대응작물이라는 생각에서다. 쌀(벼)은 아마존 밀림의 2배에 달하는 단위면적당 이산화탄소 흡수량과 1.9배의 산소배출량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밀·보리 등 주요 9대 곡물 전체 대비 이산화탄소 흡수량 6.2배, 산소배출량 6.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밀의 3배에 달하는 높은 태양에너지 이용률에 따른 낮은 토양유기물 의존도 역시 벼농사가 기후위기에 강한 대응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보다 나아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실현과도 연결짓는다.

무경운에 적합한 농기계 개발에 기업이나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경운 이양기 기본설계 후 특허출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 후원이나 지자체 지원을 요청하기에 앞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자 역할이라는 판단에서다. 기본 설계 후 시제품 제작을 거쳐 무경운 농법에 적응하기까지 다양한 실증을 위해서는 자금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펀드를 조성해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고민중이다. 또 무경운 농법으로 재배한 쌀을 소비자들이 구입해 가치소비로 이어지는 것도 바람 중 하나다.

김현인 농민은 "무경운 농사가 확산될 수 있도록 기술개발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이 뒤따른다면 무경운 농사의 지속과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ESG가 멀리 있지 않다. 무경운 농법 정착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ESG 실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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