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산 산골생활 20년 '단짠맛' 인생史

입력 2021.12.22. 19:37 김봉일 기자
[숨은 농촌 스토리, 부농을 찾아서]
곡성 죽로염 만드는 김인수·전선희씨

[숨은 농촌 스토리, 부농을 찾아서] 곡성 죽로염 만드는 김인수·전선희씨

산 중턱에 자리잡은 '네 식구'

사람과 자연의 건강함 최우선

대나무통에 넣고 아홉 번 굽고

열 번째 녹이는 번거로운 작업

양심·경험 바탕 전통방식 고집

미네랄과 천연 유황 어우러져

짠맛 덜하면서도 깔끔한 단맛

"고순도 죽염 장인으로 알아주길"

곡성군 죽곡면 와룡마을. 초겨울의 바람이 매섭다. 어둠이 내려서일까. 해발 270m에 불과한 천덕산 중턱이라는데 손발이 얼어붙을 정도의 냉기가 엄습해온다. 김인수(54) 전선희(50)씨 부부, 김나진(16)양과 김현옥(13)군 등 네 식구의 단출한 살림집이자 '천덕산 죽로염'을 굽는 가마터다. 추위에 떠는 취재진을 위해 이내 장작불이 지펴진다. 저만큼 가마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찬 바람결에 장작불이 남실남실 춤춘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 사이로 김씨가 예사롭지 않다. 긴 머리를 묶고 길러서 두건 속에 가려진 산골도사 같은 스타일,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장작더미에서 뿜어내는 열기도 잠시다. 밤이 깊어갈수록 김씨의 산골생활 20여년 얘기꽃은 그칠 줄 모르고…. 겨울바람은 맹위를 떨친다.

"죽염에 꽂혀 오로지 질 좋은 죽염을 탄생시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은 진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제 양심과 경험으로 고집스레 전통 제조방법의 죽염을 선보였습니다. 결단코 이로운 죽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으니까요. 소금은 40g이상 섭취할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반면 죽염은 1㎏이상 먹어도 전혀 유해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친환경 인증 천일염으로만 죽염을 만듭니다." 김씨는 농협 공매가격 20㎏ 소금(2020년 기준)이 일반 3천~4천원이고, 친환경 인증 천일염이 2만~6만원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데도 친환경 인증 천일염을 고집한다. 그의 고품질 죽염제조 철학 안에는 사람과 자연의 건강함이 최우선이라는 신념이 있어서다.

죽염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것 같아도 복잡하다. 특히 천덕산 1회 죽로염은 7년이상 묵은 대나무(직경 80~90㎜)에 천일염을 넣고 황토로 입구 1㎝를 막은 뒤 소나무 장작불로 800℃ 이상의 고온에서 48시간을 구워서 곱게 가루를 낸다. 이런 과정을 45일간 아홉 차례 반복하고, 열 번째는 최소 1500℃ 이상 높은 쇠로에서 용융 후 1시간30분 이상 뜸을 들인 게 10회 죽로염이다. 김씨는 사실 1회부터 9회까지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천덕산 죽로염은 스테인리스 강판이나 송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최소 1500℃ 이상의 온도로 용융, 죽염을 끓어내려서 만들어진다. 엄청난 인내심이 요구되는 기술적인 작업이다. 가끔씩 위험천만한 과정을 겪어도 성공했을 때의 만족감으로 그냥 넘어간다. 천덕산 죽로염은 또 미네랄과 천연유황이 함께 어우러져 알칼리성으로 단맛이 배어 나온다. 유효기간은 제조일로부터 5년. 구운 죽염은 습기에 약해 단단히 밀봉해서 보관해야 하는 것이 키포인트다.

"대나무에 천일염을 다져 넣고 소금에 불이 붙어서 톡톡 튀는 소리가 들리도록 쇠로에 소나무 장작을 한번만 지피면 48시간가량 탑니다. 이때 너무 화력이 강하면 각각의 죽염을 넣은 대나무가 전체 한 덩어리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합니다. 대나무가 타들어가면서 죽염은 연한 불빛에서 점차 진한 불빛을 나타냅니다. 대나무 숯과 황토, 재를 잘 골라내면 1회 죽염인 소금기둥이 완성되고, 다시 이를 잘 빻아서 계속 반복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마지막으로 유황향이 강하고 짠맛이 덜하면서 깊고 깔끔한 단맛을 내려면 1500℃ 이상의 온도로 용융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김씨는 '건강소금'인 천덕산 죽로염으로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융작업까지를 포함해야 완성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죽염 가운데 '가루 죽염'은 싸고 '알갱이 죽염'은 비싼 기이한 현상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고 주장한다. 원래대로라면 가늘게 으깨진 '가루 죽염'이 한 번이라도 더 손질해야 하기에 더 비싸야 마땅할진대,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덕산 죽로염은 '로(爐) 형태'가 다른 끓이는 방식이어서 죽염이 흘러나올 때 층이 생기지 않고 색깔도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리는 방식의 죽염은 온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보이고, 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도대체 어떻게 '알갱이 죽염'이 비쌀 수 있느냐며 김씨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김씨는 젊은 시절, 초자연적인 상념에 사로잡혀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걸 좋아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정처 없이 방황하는 방랑자로 살았다. 내가 바라는 나와 타인이 바라는 나는 어떻게 다를까 골몰히 생각했다. 나 자신도 어렴풋한, 타인에게는 더욱 모호한 내면과 심리를 구현하는 어떤 생각과 마음이 있다고 믿으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명확히 정리돼 있지도 않고 상대방이 꾸고 있던 꿈, 얼굴 너머의 내면을 마주하기란 매우 불명확한 종류의 그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무작정 소백산과 속리산, 설악산 등지를 떠돌며 수년씩 산장지기로 생활했다. 무허가 카페를 차려놓고 날마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불협한 생활도 했다. 한 번은 그저 답답한 마음에 강원도 속초에서 전남 보성 율포까지 도보여행을 하며 자신을 찾아 헤맸다. 목조주택 짓는 일도 해보고, 전어배를 탄 뱃사람으로까지 일했던 적이 있었다. 적어도 지난 2002년 담양 색시 전선희를 만나기전까지는 그랬다. 아마도 참모습을 찾기 위한 김씨의 고독한 여정이었던 것 같다.

"착하고 어진 집사람을 만나서 공짜로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정말 다시 태어났다는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접 만든 가마에서 늘 연구하는 자세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죽염을 구워내 사람들의 건강지킴이로서 기쁨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매년 11월부터 3월초까지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모든 식물들이 공기 중이나 땅 속에 있는 염기(鹽基)를 품어내는 시기여서 고품질의 죽로염 생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합니다."

이 시기가 김씨에게는 가장 바쁘고 긴장감이 감돈다. 겨울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불을 보면서 토막잠을 자야하는 현실을 맞닥뜨려야 한다. 김씨는 요즘 1, 3, 9, 11회 죽염 뿐 아니라 죽염된장과 죽염간장, 마늘죽염환도 만들어내고 있다. 전씨는 그런 그가 애잔하면서 무척 자랑스럽다.

처음엔 전씨도 도시생활을 고집하지 않은 걸 무척이나 후회했다. 산골생활은 차츰 전씨를 강인한 아내와 엄마로 만들었다.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것 들을 잊고 자신과 싸워야 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갈등이 잦아드니 전씨 속도 말간 물처럼 개운하고 잔잔해졌다. 산골에서 전씨의 일상은 바쁠 게 없어 보여도 쉼 없는 노동으로 점철돼있다.

"그래도 이제는 엄청 나아진 편입니다. 결혼 초창기엔 지금 집보다 훨씬 위쪽에 황토집을 짓고 살았어요. 당시는 죽염을 만들 때 고물상에서 허접한 빵 반죽기를 사와서 그 속에 넣고 돌덩이로 변한 죽염을 빻곤 했어요. 그것도 지인이 돈을 먼저 주시고 나중에 죽염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빵 반죽기를 구입했지요. 겨울철 내내 손바닥과 어깨가 너무 아파서 눈물을 흘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가난이 괴롭고 무섭다는 걸 처절하게 절감했어요." 전씨는 초창기 아팠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렇게 모진 세월이 흘러가던 지난 2015년 1월에 이어 2월 종편과 지상파 방송 채널을 통해 김씨 부부의 모습이 담기면서 암흑처럼 어두웠던 판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부부의 마음속에는 기쁨의 봄이 내리고 있었다. 김씨는 용기백배해서 고품질의 죽염 만들기에 열중했다. 참으로 지난한 고통과 시련의 상흔이 다시는 발현되지 않는 세월로 채워지도록 기도하면서….

쇠로 속에서 죽염이 익어가는 소리만 들어도 진행상황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죽염전문가로 탄생한 김씨. 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보다는 불순물이 없는 고순도의 죽염을 열심히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느 과정 하나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손길과 만나면 바로 '사람을 살리는 죽염'으로 태어나는 천덕산 죽로염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무엇보다도 고소한 행복을 아는 이들 부부이기에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이로, 없어지지 않는 희망을 나눠주는 사이로 늘 그렇게 함께 하기를 빌어본다.

김봉일기자 amazingreporter@mdilbo.com·곡성=김성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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