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봄의 말은 환하고 따스해야 하는데···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입력 2023.03.21. 10:11

봄이 오면 모든 건 절로 풀리는 것

그래, 봄이 오니, 지난겨울의 어둠과

차가움과 외로움 속에서 전전반측하던

일들이 돌아보인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가

내 뿜는 말들이 왜 이리 비문화적으로

어수선하면서도 거칠고, 미움이 가득하며,

비난의 각이 서 있는가? 거리 곳곳에

현수막들이 '앞 다투어' 걸려 온통

펄럭대고 있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로

마구 쏟아내는 문구들이 모두 '정치적'

막말 수준이다. 일부 지자체들도 이들

정치현수막 제한을 위한 개정안을

마련 중이란다. 자제력을 통해

정치인의 말에서 품위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봄의 시

'때때로 봄은/ 으스스한 오한을 이끌고/ 얇은 외투 깃을 세우고 온다'(문정희)고 했지. 그런 기분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의 마음도 있다.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 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김지하)

문정희는 꽃 피는 봄에 느닷없이 닥치는 꽃샘추위에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에 비해 김지하의 말은 '뭇 존재의 연관성' 속에서의 자기라는 각성의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봄을 맞는 기쁨을 만끽한다. 해월 최시형의 자연관 같고, 불교의 연기론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기에 꽃과 새와 더불어 봄의 노래를 부르자는 것이다.

봄은 어쨌든 오고야마는 것이다. 벌써 매화가 피나 했더니, 산수유 꽃이 뿜어 나오고, 진달래가 벙글었다. 계절 순환의 그 당연함을 확인한다. 그래서 '절대 겨울에 나무를 베지 마라. 힘들 때 절대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마라. 기분이 최악일 때 절대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마라. 폭풍이 지나고 봄이 올 것이다.'(로버트 H. 슐러)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기도 하는 것이다. 봄이 오면 모든 건 절로 풀리는 것. 그래, 봄이 오니, 지난겨울의 어둠과 차가움과 외로움 속에서 전전반측하던 일들이 돌아보인다. 겨울이라는 삶의 질곡의 터널을 빠져나와 환한 꽃들 앞에 서는 감회가 새롭다. 마스크 없이 나서는 안도의 표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코로나는 이제 끝을 보이는가? 이 모든 게, 너무 섣불리 누리는, 여전히 정치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해 불안한 상태에서의 봄맞이가 아닌가?

-시집

오랜 만에 시집을 묶는다. 올봄에 출간될 예정으로 며칠 전 3교의 교정지를 출판사로 보냈다. 언어를 다듬고 고치는 마음이 여전히 편치 않지만, 나를 내내 끌고 온 그 끙끙댐의 산고로 또 한 번의 봄을 맞으려는 것이다. 거친 말의 농사를 근근히 지어오면서 나는 자주 걸어온 길을 돌아본 듯하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어섰다는 게 부담이 된다. 어느덧 등단 52년째. 염려스러운 것은 나의 말이 노쇠한 노인의 소리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웅크린 바위 피운 꽃이/ 악수 청하는 적의 손처럼 흔들린다.// 나의 웅덩이는 어둡게 닦은 수면의 백지에/ 그 화해의 수결(手決)을 확실하게 인쇄해놓는다.'('제비꽃')

시집에 실린 짧은 시에서 '화해'라는 말이 은근히 눈길을 끈다. 바위와 제비꽃과 웅덩이가 바람에 의해 서로를 열어놓는 봄의 풍경을 두고 한 말이다. 그래, 서로 트고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화해의 태도가 크게 요구되지 않은가? 또한, 내가 나이가 많은 늙은이라 해도 '봄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걸 인식하자. 그런 알아차림으로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시 '봄의 말'에는 그 순응과 화해와 자신을 내어주는 관용이 함께 있다. '늙은이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몸을 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 늙음이란 '알아듣고', 자리를 '내어주고', '몸을 던지는' 것임을 시집을 묶는 나의 '봄의 말'로 되새긴다.

-정치현수막

그러나 시만 읽으며 봄을 바라보고 있기는 너무 한가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우리 사회의 봄의 말들이 온통 헝클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가 내 뿜는 말들이 왜 이리 비문화적으로 어수선하면서도 거칠고, 미움이 가득하며, 비난의 각이 서 있는가?

언제부턴가 이상한 현수막들이 천지를 뒤덮고 있는 게 이를 잘 보여준다. 거리 곳곳에 현수막들이 '앞 다투어' 걸려 온통 펄럭대고 있다. 지난해 6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정당은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이 신설됐다. 지자체에 별도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간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말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현수막들이 마구 나타나기 시작, 봄 들자 아주 만연해버린 상태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로 마구 쏟아내는 문구들이 모두 '정치적' 막말 수준이다. 비아냥이거나 독기 서린 저주거나, 마구 뱉는 비방으로 가득 차 있다. 가뜩이나 선거 후 버려지는 현수막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마당에 이제 대놓고 '쓰레기'(그야말로 말의 쓰레기들에 지나지 않는다)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의 언어 수준이 후안무치로 막가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안 나올 수 없는 지경이다.

선거나 정치 쪽의 과잉 운동과 반응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데다 현수막 사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는 가운데, 정치 현수막의 난립은 이를 역행하는 폐해가 아닐 수 없다는 자각을 하는 모양이다. 현수막이 급증하면서 지자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는 지난 9일 논의 끝에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행정안전부에 전달했다. 일부 지자체들도 이들 정치현수막 제한을 위한 개정안을 마련 중이란다. 이런 자제력을 통해 정치인의 말에서 품위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지경에서, 이 봄의 저 살벌하게 펄럭대는 말들 앞에서, 시집을 펼쳐 정갈한 봄의 말들을 찾아보는 내 모습이 되레 우스울 지경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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