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윤석열 화법'의 비극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1.31. 09:11

윤석열의 화법은 '즉흥적 순발력'에 기대는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말을 유창하고 재미있게 잘하긴 하는데,

그는 참석자들의 보스거나 리더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웬만하면 웃어줄 준비가

돼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썰을 풀기는 쉽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차별화된 다른

유형의 화법을 잘 구사할 수만 있다면

이런 유형은 문제될 게 없으며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줘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간혹 이런 화법에

중독된 나머지 공식석상의 발언마저

같은 방식의 화법으로 밀어 붙여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지만 윤석열도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침묵은 말보다 더 능변이다."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그는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그 이유 역시 침묵과 관련이 있다. 그는 "루소는 지극히 귀중한 자질인 '침묵'을 갖지 못했다"며 "말하고 행동할 때가 오기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칼라일은 입이 매우 무거운 사람이었을까? 그래야 마땅할 것 같은데, 오히려 정반대였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칼라일보다 14년 연하였던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의 자서전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윈은 "형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을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 잘 하기로 유명한 찰스 배비지와 찰스 라이엘이 모두 있는 자리였는데, 칼라일이 침묵의 이점을 주제로 하여 저녁 내내 장광설을 늘어놓아 좌중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배비지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칼라일에게 인사하며 침묵에 대해 흥미있는 강의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실제로 칼라일처럼 다변가가 침묵의 미덕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나 믿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을 세계에서 '가장 말 많은 민족'으로 꼽는 속설에 따르자면 아마도 한국인과 아일랜드인 중에 그런 사람들이 비교적 많을 것 같다. 아일랜드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말을 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인데,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영국인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 아일랜드인에게 듣는 법을 가르친다면, 이곳은 대단히 수준 높은 문명 사회가 될 것이다."

행여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을 비하하는 걸로 오해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속된 말로 '썰'에 강하다는 건 장점이지 결코 단점은 아니다. 다만 썰의 품질에 대한 자기객관화 능력은 갖추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변가이자 달변가 검사로 통했던 대통령 윤석열의 화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윤석열은 늘 보기에 딱하다.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함으로써 자주 화를 자초한다." 내가 지난해 1월에 출간한 '좀비 정치'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화법엔 변함이 없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윤석열의 화법은 '즉흥적 순발력'에 기대는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말을 유창하고 재미있게 잘하긴 하는데, 그는 참석자들의 보스거나 리더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권위와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말의 내용이나 품질에 대한 이의 제기나 도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웬만하면 웃어줄 준비가 돼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썰을 풀기는 쉽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차별화된 다른 유형의 화법을 잘 구사할 수만 있다면 이런 유형은 문제될 게 없으며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줘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간혹 이런 화법에 중독된 나머지 공식석상의 발언마저 같은 방식의 화법으로 밀어 붙여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지만 윤석열도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지난 15일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이었던 윤석열은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다.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UAE의 적은 이란' 발언 사건이다.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탁현민은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다고 해명하는데, 그게 격려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어도 그 정도 발언이 문제가 될 거라는 판단을 그 안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다면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그런가? 시스템이 붕괴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시스템이라고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윤석열 마음대로'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지 않다면 탁현민이 말한 '시스템 붕괴'는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붕괴된 시스템이 또 다시 붕괴된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윤석열 화법'의 비극은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기인식 능력이 박약하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윤석열은 자신을 전천후형 달변가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어스테핑'을 6개월간이나 지속시킨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건만, 윤석열은 여전히 자신의 다변 또는 '달변'을 중단할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터뷰나 발언시 원고 없이 순발력 하나로 버티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해 9월 22일 뉴욕에서 벌어진 이른바 '대통령 비속어 논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건, 내가 가장 놀란 건 단 몇십초를 참지 못해 부적절한 상황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그의 다변 체질이었다. 아니 단 10초만 참았어도 참모들만 듣는 자리에서 아무 논란 없이 그 어떤 발언이라도 속 시원하게 할 수 있었을 게다.

딱하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현재의 대통령 지지율조차도 윤석열에겐 과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최병천이 잘 지적했듯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일 1망언'을 하는지 알고도 그를 뽑았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석열 화법'의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끔 할 수 있는 사실상의 주도권은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적 신뢰를 얻으시라. 그건 윤석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만으론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네거티브 공세를 하더라도 적반하장이란 말을 들을 수 있는 내로남불은 없는지 꼭 점검해보시라. 양쪽 모두 정치적 자해를 일삼는 경쟁은 제발 좀 그만해주시길 간곡히 호소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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