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외교광장] 계묘년의 국제정세를 읽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입력 2023.01.09. 18:12

미국의 최근 대아시아 전략은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본격화에 맞춰져 있으며,

최근 한일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공명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는

진영편향과 가치 외교에 따라 대미 및

대일 외교에 올인했다. 친미 및 친일에

집중된 외교는 나토정상회의 참석으로

시작되어 연말의 동남아 순방에서 절정을 이뤘다.

강대강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나,

본때를 보여주는 것보다 긴장 완화를 모색할 때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남북이 대결구조로 갈 경우,

한반도는 모든 위기를 떠안을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전쟁불사론이 아니라

평화공존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이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국익을 지키는

가장 실용적인 외교이며,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값싼 방법이다

2023년의 새해가 밝은지도 열흘이 지나갔다.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무척 어렵다. 작금의 국제질서는 탈냉전 체제의 협력적 세계화가 약화하고 배타적 민족주의와 지정학적 대결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초강대국 간 세력 변동의 격랑으로 말미암은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이 계속 커지는 동시에 팬데믹을 힘겹게 지나온 세계 경제는 침체국면으로 진입한다. 그중에도 한국은 불황과 수출 부진,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을 모두 안고 있는 복합적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데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충돌지점에서 또다시 생존을 위협받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년이 되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공방의 소모전으로 고착되고 있다. 당장은 미국과 유럽이 지원을 늘릴 의사를 밝혔지만, 직접적 개입 없이 배후 지원만으로 승전은 어렵다. 전쟁이 장기화가 될 경우, 서방도 러시아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각에선 소위 '한반도식 해법'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휴전회담과 더불어 동부와 서부전선에서 길고 긴 소모전을 벌였었다. 우크라이나도 종전이 아니라 정전과 분단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서방도 우크라이나가 한국의 전철을 밟아 분단상태로 완충지대가 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게다가 2024년 초로 예정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선 일정을 앞두고 패배로 인식될 양보나 종전은 가능성이 작다. 관건은 누가 먼저 지치는가에 달려있는데, 그 시간이 꽤 길 것 같다.

향후 최소한 수십 년 동안 세계는 물론이고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독립변수는 미·중이 벌이는 전략경쟁이 될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은 중간선거를, 중국은 시진핑의 3연임을 앞두고 갈등이 고조되었었다. 미국은 체재 비판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내세우며 대중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초격차 유지를 위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를 노골화했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발리의 G20에서 3년 만의 대면 정상회담은 의외로 차분했고, 고위급 대화 채널 일부를 복구하며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 모두 경제문제를 포함한 산적한 국내문제로 당분간은 소강 국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국내 문제들은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양국의 갈등이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재가열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의 위드코로나가 여의치 않고, 경제 회복이 더디면 외부의 위협을 부각하려 할 것이고, 미국의 정치가들은 국민의 83%에 이르는 반중 정서를 활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은 직접 충돌할 경우,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기에 갈등을 전가하려 할 것이고, 전가된 대리 충돌의 주요 지점은 대만, 동중국해, 남중국해와 함께 한반도다. 이중 한반도의 분단 구조는 그들의 전략적 경쟁에 있어 이용 가치가 높기에 지정학의 도래와 함께 본격적인 갈등의 위험지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미·중 관계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겠지만,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대리 충돌의 중심이 되지 않게 하려면 남북한이 긴장 수위를 낮추고 평화공존을 유지해야 한다. 남북이 법적인 통일이나 유무상통의 개방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적대적 관계 해소와 안정적 관리는 절실하게 요구된다. 한반도 긴장이 완화하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남한은 군사동맹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부담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미국의 최근 대아시아 전략은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본격화에 맞춰져 있으며, 최근 한일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공명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는 진영편향과 가치 외교에 따라 대미 및 대일 외교에 올인했다. 친미 및 친일에 집중된 외교는 나토정상회의 참석으로 시작되어 연말의 동남아 순방에서 절정을 이뤘다. 동남아 순방에서 과 한·미·일 을 통해 한국이 대륙을 견제하는 해양 세력에 본격적으로 동참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인태전략이라는 용어 자체부터 대륙은 없으며, 오히려 대륙을 배제하고 봉쇄하는 함의를 지닌다. 더욱이 한국 정부가 미국이 중러를 압박할 때의 단어와 표현을 똑같이 사용하면서 날을 세웠다. 한-미-일을 묶어 북-중-러를 견제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은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이익은 아니다. 더욱이 경계가 불분명한 안보협력의 확대 대상으로서 일본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가치들은 대한민국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고, 또 추구하고 있는 소중한 가치지만, 누가, 어떤 대상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실리를 포기해야 할 만큼 '가치 외교'는 가치가 없는 것인데, 한국의 외교가 불안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시점이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과 유사하단 얘기가 나온다. 또한 올해 2010년 또는 2018년 어느 상황으로 진전될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다. 2010년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있었던 해이고, 2018년은 평창올림픽 계기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로 갔었다. 당시엔 남한이 나름 중재자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중재자가 없다는 점이 불안을 더 키운다. 필요한 것은 강대강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나, 본때를 보여주는 것보다 긴장 완화를 모색할 때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남북이 대결구조로 갈 경우, 한반도는 모든 위기를 떠안을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전쟁불사론이 아니라 평화공존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이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국익을 지키는 가장 실용적인 외교이며,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값싼 방법이다.

흑토끼는 검다는 의미에서의 불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심오한 지혜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반전과 양면의 성격처럼 2023년 위기의 전망 속에서 치밀한 전략을 통해 극복하기를 소망한다. 최소한 폭풍우를 품은 검은 구름이라도 가장자리에서 빛을 내며 화창한 하늘을 기대하게 만드는 '실버라이닝'의 한 해라도 되기를 기원한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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