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브라질의 룰라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2.10.11. 18:39

룰라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평생 철강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원래 정치에는

무관심했고, 오직 축구에 미쳤던

보수적 청년이었으나 결혼 뒤 첫 아이의

출산 중에 의료사고로 아내를 잃으면서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눈뜨고 대오각성하여

진보적 정치인이 됐다. 결선투표가 이달 말로

미뤄지면서 브라질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이념 대결 양상을 보여온 양 후보 간

선거운동도 한층 격화되고 있다

인간적이고, 서민의 애환을 잘 아는,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재임시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룰라 후보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지구 건너편 브라질의 대통령 선거가 흥미만점이다.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는 군 출신 브라질 현직 대통령 보우소나루(67)가 며칠 전 10월 2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예상 밖으로 선전하여 애당초 과반 득표로 당선 확정을 노렸던 브라질 노동당(PT) 후보 룰라(76)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일단 저지했다. 브라질은 우리나라와 달리 득표율 50%를 넘는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 간에 결선투표를 한다. 이번 1차 선거에서 룰라 전 대통령이 득표율 1위를 하긴 했지만 과반 득표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이달 30일 결선투표가 있다. 그간 통 인기가 없던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숨은 표'가 대거 드러나면서 이달 말 결선투표는 예측불허의 접전이 될 거라고 전망된다.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의 발표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브라질노동당(PT)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이 48%를 득표해 1위, 자유당(PL) 후보인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은 43%의 지지율로 2위다.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5% 포인트로, 그간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차이를 보였던 것에 비해 크게 좁혀졌다. 두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9명 후보의 득표율은 모두 합쳐 8%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48%를 얻은 후보가 당선됐지만 브라질은 우리와 선거제도가 다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다. 특히 역대 대선에서 항상 문제가 됐던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이 사라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 브라질의 선거가 우리와 다른 점은 투표일이 일요일이라는 것(1차 투표와 결선 투표 둘 다 일요일), 그리고 투표 연령이 16세 이상이라는 것이다. 16세라는 투표 연령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결국 미래 세상의 주인은 젊은이들이므로 이들이 투표에 참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룰라는 원래 12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도무지 대책이 없는 사람이어서 첩을 두어 거기서도 12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룰라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룰라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도합 24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합동 야유회를 간 것이다. 거기서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첩의 자식들에게만 사주었다. 이것이 룰라에게는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다행히 룰라의 어머니가 자애롭고 대단히 훌륭해서 룰라는 반듯하게 자랐다(형편없는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영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룰라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평생 철강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원래 정치에는 무관심했고, 오직 축구에 미쳤던 보수적 청년이었으나 결혼 뒤 첫 아이의 출산 중에 의료사고로 아내를 잃으면서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눈뜨고 대오각성하여 진보적 정치인이 됐다. 그는 브라질의 서민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후보로서 2002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 당선되던 날 룰라는 이렇게 탄식했다. "아,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좋았을텐데"

룰라는 2006년 재선에 성공해 브라질 최초 재선 대통령이 됐다. 룰라는 집권 8년 동안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빈곤 아동을 위한 가족수당을 도입하는 등 좌파적 정책을 폈는데, 그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브라질 경제는 그 시기 연 3%씩 성장했는데, 이것은 브라질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게다가 브라질의 악명 높은 불평등이 상당히 개선됐다. 그러니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다. 그리하여 룰라가 8년 집권 후 퇴임할 때 국민지지율이 80%가 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룰라는 퇴임 후 비리 혐의로 2016년 3월 구속되며 피선거권을 상실했다. 그리고 2018년 현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2021년 3월 연방 대법원이 부패 스캔들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룰라는 정계 복귀의 기회를 얻었다.

결선투표가 이달 말로 미뤄지면서 브라질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이념 대결 양상을 보여온 양 후보 간 선거운동도 한층 격화되고 있다. 현재 리오 데 자네이로, 상 파울로 등 거대 도시의 시장, 도지사들이 연달아 보우소나루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총선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많이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정치적 중립을 어겼다는 이유로 탄핵당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브라질 선거제도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반면 3, 4위 후보가 룰라 지지를 선언한 점은 룰라 후보에게 큰 도움이 된다. 워싱턴 포스트는 "결선투표까지 4주간은 브라질 역사상 정치적으로 가장 불확실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달 30일은 전 세계의 이목이 브라질에 집중될 것이다.

끝으로 룰라와의 개인적 인연 하나. 나는 1994년 1년간 교환교수로 하버드대학에 가 있었다. 그해 가을 룰라 당시 브라질 대선 후보가 하버드대학 법대에 와서 강연을 했다. 2백명 정도의 청중이 큰 강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룰라는 2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 강의실을 둘러보니 한국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특히 이날 룰라는 여러 명의 정책 참모들을 대동해서 청중의 질문에 대해 본인이 대답하기도 하고, 좀 전문적 질문은 참모더러 대답하게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해 가을 대선에서 룰라는 커다란 선풍을 몰고 왔으나 결과는 낙선, 4년 뒤 또 낙선, 결국 세 차례의 도전 끝에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그리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참모여서 청와대 만찬에서 룰라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룰라에게 당신의 하버드대학 강연을 들었다고 하니 룰라는 아주 반가워하면서 악수를 한번 더 하자고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었다. 인간적이고, 서민의 애환을 잘 아는,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재임시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룰라 후보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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