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대학입시의 근본적 개혁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14. 18:14

실력주의는 성공자에게는 자만심을,

실패자에게는 모욕을 준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복마전처럼

얽혀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누구도 알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확 쳐내서

단순화시켜야 한다. 복잡한 제도 속에 부정,

반칙이 싹튼다. 이제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실력주의의 비인간적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을 구출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창의적 교육이 가능해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제대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는 바야흐로 실력주의(meritocracy) 시대다.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성공하는 체제를 실력주의라고 부른다. 얼핏 보면 이것은 매우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실력주의에는 숱한 맹점과 불공정이 숨어 있다. 아이들의 수능점수는 집안 배경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니 결코 공정한 잣대가 아니다. 시험에 대비하여 어릴 때부터 지나친 경쟁과 과외에 매달리는 문제는 요즘 미국도 한국 못지않게 심하다. 그 결과 미국 일류대 입학생의 상당수가 심리적 불안,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실력주의는 사회적 성공과 실패를 오직 실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분류함으로써 실패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과거 귀족주의는 인간의 태생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했으므로 매우 불공평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본인의 잘잘못은 아니고 조상 탓이나 운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실력주의에서 실패자는 오직 제 잘못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고로 실력주의는 성공자에게는 자만심을, 실패자에게는 모욕을 준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최근 저서 (The Tyranny of Meritocracy)에서 실력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실력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샌델 교수는 새로운 대학입시 방식을 제안한다. 샌델 교수는 하버드 대학이나 스탠포드 대학 입시에서 추첨을 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하버드, 스탠포드에 매년 4만명의 학생이 응시하는데, 그 중 합격생은 2천명에 불과하다. 4만명 중 최소한의 학력 기준을 정해서 2-3만명을 가려낸 뒤 추첨을 해서 최종 합격자를 정하면 그 중 누가 합격해도 충분히 입학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적 최소기준 미달 학생들은 제외하면서 지나친 입시경쟁을 막고,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운이 당락을 좌우하므로 합격생은 자만하지 않을 것이고, 낙방생은 굴욕감에서 해방된다.

이런 제안을 하면서 샌델 교수는 야구 선수 중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는 놀란 라이언(Nolan Ryan) 예를 든다. 라이언은 역대 투수 중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으며, 야구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로 오른 선수다. 그런데 그가 열여덟 살 때 야구 드래프트에 나섰을 때, 드래프트가 열두 바퀴 돌 때까지도 지명을 못 받았다. 294명이 지명받고 난 뒤 비로소 라이언 이름이 불렸다. 비슷한 예로 미식축구 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손꼽히는 톰 브래디(Tom Brady)는 199번째로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다. 이처럼 인간의 재능을 평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능력과 재능을 수능 점수와 몇 가지 지표, 추천서로 평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실력주의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하버드대학 입학을 추첨으로 하자는 샌델 교수의 제안은 얼핏 보면 파격적이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도 추첨 방식 도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언제까지 시험 점수 하나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할 것인가.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늦어도 많이 늦었고 아이들의 고생, 학부모의 불행은 이미 너무 크다. 우리나라에 강력한 패배주의가 하나 있다. 즉, '입시제도 아무리 바꿔도 입시지옥 해결할 수 없다' 과연 옳을까? 사람들은 해방후 지금까지 대학입시 제도가 수십번 바뀌었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라는 사실을 근거로 이런 패배주의를 쉽사리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결국 입시제도를 제대로 바꾸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유라 사건',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조국 사태', '한동훈 딸 논문' 같은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데도 입시제도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입시제도 말고 무엇을 바꿔야 입시지옥 문제는 해결될까? 다른 나라는 왜 우리나라만큼 심한 입시지옥이 없을까? 결국 관건은 입시제도다. 수없이 바꾸고 또 바꾸어왔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해 결국 가진 자, 부자들은 그 제도를 넘어서서 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왔다. 그런 관행을 타파할 정도로 근본적 입시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의 입시지옥은 세계 최악이므로 더더욱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미국을 많이 모방한 탓에 한국의 내신, 수능의 관계는 미국과 닮았는데, 그나마 미국에는 가난하지만 우수한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길이 약간은 열려 있는데 반해 우리는 점점 그 길을 폐쇄하고 있다. 수능을 확대해도 부잣집 아이에게 유리하고, 내신을 확대해도 부잣집 아이에게 유리하니 진퇴양난이다. 수년 전 입시사정관 제도를 미국에서 이식했는데, 머리 좋은 한국인들은 삽시간에 귤을 탱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강남 부잣집 아이들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이용해서 대거 일류대에 입학하고 있다. 이럴 바에야 입학사정관 제도는 없애는 게 낫다. 한국의 입시지옥은 많은 부분 미국제도의 모방에서 왔는데, 오호라 靑出於藍, 우리는 미국을 능가하는 더 나쁜 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게 길이 있는가? 찾으면 왜 길이 없겠는가. 고교 내신 성적만 좋으면 합격시키는 텍사스주립대, 내신과 SAT 중 본인에게 유리한 걸 선택케 하는 선택입학제 등 미국에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추첨도 탁월한 아이디어다.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도 좋은 방안이다. 무엇보다 복마전처럼 얽혀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누구도 알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확 쳐내서 단순화시켜야 한다. 복잡한 제도 속에 부정, 반칙이 싹튼다. 이제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실력주의의 비인간적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을 구출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창의적 교육이 가능해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제대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日暮途遠,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경북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