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예측 안 되는 계절의 단상들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입력 2022.08.30. 10:27

전 지구가 이상기온으로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40여년만의 고온현상이라고

비명이 터졌다. 홍수로 인한 물난리도

예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우리나라는 물론, 그 재해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해, 세계보건기구가

21세기의 가장 큰 건강 위협으로

꼽고 있을 정도다. 기상에 대한 예측 불가

상태가 우리를 겁나게 한다. 3년 째

역병의 계속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차츰 달라지는 듯하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 세계가

공포에 휩싸이면서, 인류의 미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좌우될 수 있겠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가을

찬 기운에 이불을 끌어당기는 새벽녘. 어스름 속으로 비 냄새가 난다. 아니, 아직 여름이잖아. 8월 말인데 벌써 가을 냄새를 맡다니. 여름의 끝인데, 가을의 전령사인 고추잠자리가 마을로 내려와 저공비행을 한다. 그렇지, 처서가 며칠 전에 지나갔지. 백로가 열흘 가량 남았네. 올 추석은 예년에 비해 빠르니까 가을도 만사 제쳐놓고 여름이 종지부를 찍기도 전에 우리를 덮치고 보는 게다. 때 맞춰 고향에서의 벌초 통보. 올해도 작년처럼 코로나로 문중 단위 벌초는 생략하고, 집안 단위로만 각자 벌초를 하는 것으로 한단다.

여름을 과시하느라 기세 좋던 구름 덩어리들은 조각조각 부서져 하늘에 양떼처럼 널린다. 과일의 미각이 혀끝을 물큰하게 한다. 햇빛은 예리해지고, 푸나무는 농익은 냄새를 풍긴다. 일요일 그 빛과 냄새를 헤아리며 여행 출발 집결지에 가니, 어린이회관 앞의 숲 색이 바랜 듯하다. 가을이 온 게 역연하구나!

그러나 이 당연한 계절의 전환이 불안하다. 더위는 아직 끝나지 않고, 비는 시나브로 세차게 내린다. 가늠 안 되는 더위와 비로 올 여름 얼마나 큰 피해를 자아냈던가. 전 지구가 이상기온으로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40여년만의 고온현상이라고 비명이 터졌다. 홍수로 인한 물난리도 예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우리나라는 물론, 그 재해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해, 세계보건기구가 21세기의 가장 큰 건강 위협으로 꼽고 있을 정도다. 기상에 대한 예측 불가 상태가 우리를 겁나게 한다. 이런 걱정과 공포가 아직 다 가시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빨라진 절기 때문인지,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폭염과 홍수도 이제 지나갔거니 하고 마음을 놓아본다. 곧 난방에 신경을 써야하는 가을이 오겠거니 하고 지긋이 계절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시장 바닥에 쏟아져 나오는 햇과일이 여전히 비싸긴 해도 그 향취에 취하면서, 북적대는 장판에서 마스크를 꼭 써야하나 고민하고, 샤인머스캣을 맛보기 위해 잠깐 마스크를 벗는 순간에도 편치 못한 듯 주위를 돌아보는 무의식 적인 행위와 같이 말이다.

-바이러스

여름 지나 숙질 줄 알았다. 그러나 천만에, 바이러스와의 악연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우리? 바이러스를 '우리' 속에 넣는 이 느긋함이라니!)는 함께 앓았다. 글쎄, 바이러스는 자연 생태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동하는데, 거기에 인간이 꼴 사납게 걸려든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서로 꽤 친해진 듯(?)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도 수차례의 접종과 '거리 두기'의 해제로 인해 느슨해진데다, 마음마저 어지간히 면역 상태가 되어서인지 심각해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며칠 전 신문 보도. '대구경북 이틀 새 코로나로 25명 숨져'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전국 사망자는 60여명으로 누적으로 2만6천여 명에 이르렀다. 사망자 연령대를 보니 대부분 고령층이다. 코로나의 위세가 꺾이기는커녕,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올 추석도 요양병원은 '거리두기'를 유지, 접촉 면회를 금지한단다. 모처럼 '거리두기' 없는 명절이 되는가했는데, 감염 위약시설의 방역수칙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지난 설 명절의 오미크론 발 유행 확산으로 접촉면회가 제한되었는데, 여전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3년 째 역병의 계속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차츰 달라지는 듯하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 세계가 공포에 휩싸이면서, 인류의 미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좌우될 수 있겠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인간만이 아니다. 과수 농사도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보도들이 최근 더러 나온다. 바이러스로 인한 과수농가의 피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과수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생산량이 줄고, 당도도 낮아져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최근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상당해 이를 예방할 바이러스 없는 '모수(母樹)' 확보에 힘을 쓰고 있단다. 이른바 '무병화 묘목'의 대량 보급이다. 그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 경산 종묘기술 개발센터란다.

코로나19의 종식은 힘들 듯하니, 감기처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체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과학의 발달로 인간도 무병화 아기 출산을 통한 근본적인 바이러스 탈출을 도모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씁쓸한 공상도 해보게 된다.

-다시 가을

여름은 위대했다고 오래전 한 시인은 찬탄했다. 이제는 그 말을 수긍하느냐하고 새삼 묻는 시대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을 두고 한 말일 뿐이다. 여름의 위대성 앞에서 인간은 매번, 지금도 여전히 곤욕을 치르지 않느냐 말이다. 가을을 두고 위축된 생을 다시 가다듬어보려 하지만, '여름날의 호숫가/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라는 노래를 읇조리며 낭만을 구가하기에 앞서 여전히 자연의 수용은 고통스러울 뿐이다. 이상기온으로 점점 더 그러하리라.

또한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여전한 관능과 치통, 조울과 위산과다로 인한 감정의 역류. 검은 마스크를 한 이들이 떼 지어 횡단보도 앞에서 불타는 눈길로 이쪽을 바라본다. 이쪽도 흰 마스크를 낀 무리들이 제각기, 밖에서 욕망들을 쓰다듬고 만져왔던 손부터 씻으려 서둘러 귀가하려는 제 그늘들을 챙긴다. 모든 게 이런 식의 풍경일 뿐이다. 가로수 그늘이 엷어지면서 햇살이 바늘처럼 이마와 목덜미에 꽂히는 계절. 그래도 가을은 온다고 자위한다. 마치 '한잎 두잎 나뭇잎이/낮은 곳으로 자꾸/내려 앉습니다/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많다는 듯이'(안도현의 '가을엽서')라는 말에 짐짓 감전이라도 된 듯이.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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