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여행은 이제 어떤 탈출인가?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입력 2022.02.15. 10:14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마르셀 푸르스트)라는

말들을 되뇌어보는 요즘이다

엄청나게 여행이 많아졌지만,

그야말로 진정한 고독을 되씹는

여행다운 여행은 희귀할 정도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행은 현실의 도피며,

코로나 불루를 탈출하기 위한

잠깐 동안의 힐링 추구 몸짓일 뿐이다

#고독

자코메티 예술의 근저에는 고독이 서려 있다. 그의 조각 작품들을 두고 "어떤 비밀스러운 불구 상태가 안겨 준 고독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숨어들어 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윤정임 옮김, 열화당)에서 말했다. 그 고독은 "다른 모든 존재와 똑 같아지는 우리들 각각의 고독"이며,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은 그 고독의 지점에 언제나 귀착된다고도 했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게 걸어가는 인간의 형상이다. 지향점을 잃고 걷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 하체를 가늘고 길게 표현하여, 힘없어 보인다.

자코메티의 고독과는 질이 다르겠지만, 기실 우리에게도 각각의 고독은 있을 것이다.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20 퍼센트 이상이 외롭다고 대답했단다. 보다 예민하게 조사해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특히 코로나 상황이라 더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는 고독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자코메티적 인간들이 많아진 듯하다. 거리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들어 엄청나게 늘어난 여행객들의 뒷모습들이 결코 밝지 않다. 여행? 그래 요즘은 2년 전의 여행의 붐은 사라져버렸다. 세계로 열린 여행 말이다. 그 대신 나라 안에서만 복닥거린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준동이 심해지고, 새로운 변이종의 확산이 늘어나면서, 여행조차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면서 갇혀 있는 건 너무 지옥스럽다. 차츰 코로나 불루라는 외로움에 휩싸인다. 그래서 혼자(또는 가족 단위로)서 '혼자의 공간'인 자가용을 몰고 나가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걸 여행이라 한다. 어쩌면 철저하게 고독한 여행인 셈이다.

설날에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하여 귀향을 자제시킨 정부의 권유가 안쓰러울 지경인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다고 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건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는 고향 가는 대신-고향행 자제라는 명분이 주어졌으니- 대놓고 여행을 선택한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설 연휴 동안 제주도는 여행객들로 붐볐고, 동해안 등 명승지마다 주차 전쟁을 치렀다. '혼자의 공간'인 자가용을 몰고 왔지만, 먹고 마시고 자는 문제는 어차피 숙소와 식당, 카페 등에서 처리해야 하니, 정부의 거리두기 강조가 무색해지고 만 것이다.

#여행

여행이 고독의 여정이라는 점은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얼른 생각나는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은 길의 문학, 곧 여행 소설의 백미로 꼽힌다. 겨울이 되어 공사판 일을 쉬게 된 영달은 여자 일로 달아나다 우연히 정씨를 만나 정씨의 고향 삼포로 동행한다. 중간에 창녀였던 백화를 만난다. 기차역에서 정씨는 삼포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더이상 섬이 아니며, 관광호텔을 짓느라 몰라보게 파헤쳐져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고향을 간다는 백화를 떠나보내고, 둘은 삼포에서 일자리나 찾아보자며 기차를 탄다. 이 소설은 뜨네기 인물들의 정처 없음을 통해 산업화로 특징지어지는 1970년대의 한 단면을 묘사한다. 삼포는 정씨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고향의 모습일 뿐이다.

신경숙의 '부석사' 역시 여행이 주제다. 우연한 기회에 두 남녀가 부석사를 찾아가는 동행자가 되는데, 둘은 각자 사귀는 사람으로부터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다. 그리하여 둘은 존재론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부석사의 부석 설화를 떠올린다. 두 개의 돌 사이가 떠 있는 부석(浮石)의 그 '틈'에 대한 인식으로 고통의 기억을 반추하는 두 사람은 국도상에서 방황하다 차바퀴가 빠지면서 눈 속에 갇히게 되어 부석을 찾는 일이 실패한다.

'삼포 가는 길'과 '부석사'는 결국 상실의 결과를 갖는다.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되고, 부석으로 가는 길은 불가능한 사고로 막히는 것이다. 산업화를 거쳐 도시화의 심화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상실했다. 바로 고향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다. 고향이라는 것도 존재하지만, 그 공간 개념은 사라지고, 무엇보다 생각 이상으로 바뀌어버려 그 원형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찾는 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자가용을 몰고 나다니면서 사방을 기웃대고 다니는 것이다.

#치유의 꿈

외국으로의 여행도 그렇지만, 국내 여행 역시 패턴은 동일하다. 대개는 '무엇인가를 사진에 담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되고 있다'. 수잔 손택의 말이다.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사진이라도 찍어야 '여행하고 있는 작업'이나마 열심히 한다는 걸 과시할 수 있다는 게다. 일개미 한국인의 습성 탓인가? 어디든 부지런히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어서 내보이는 건 여행도 하나의 실적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까? 이런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고미숙이 그것을 "생명의 거친 약동이 생략된 '침묵의 소요'일 따름"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퍼레이드 만으로 그냥 공간들을 가로지를 뿐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여행이다. 찢어진 주머니에 두 손을 내리꽂은 채 그저 길을 떠나가도 좋은 것이다"(체 게바라),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마르셀 푸르스트)라는 말들을 되뇌어보는 요즘이다. 엄청나게 여행이 많아졌지만, 그야말로 진정한 고독을 되씹는 여행다운 여행은 희귀할 정도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행은 현실의 도피며, 코로나 불루를 탈출하기 위한 잠깐 동안의 힐링 추구 몸짓일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삼포'를 꿈꾸고, 부석사 바위의 그 '틈'을 떠올리며, 거기 가서 제 상처를 치유받기를 기원하며 사진기의 셔트를 눌러댄다.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면 제대로 된 고독의 현실감이 새롭게 재음미되리라 기대하면서.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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