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노동이사의 등장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2.01.25. 12:38

사외이사 제도는 20년 넘게

시행해본 결과 경영측이 제안한

안건에 대해 '고무도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 본령인 견제와 감시

기능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경영참가,

특히 의사결정 참가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경영참가라는 것은 하기

나름이고, 잘만 하면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걱정은

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 대표가 공공기관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경영에 직접 참가하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가 1월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공포일로부터 6개월 뒤, 즉 올해 하반기에 발효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한전, 인천공항, 국민연금공단 등 13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1명 앉히게 된다. 1명이라는 숫자는 의결을 좌우할만한 숫자는 전혀 아니지만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 모두 노동계의 숙원사업인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에 동의하면서 이번 입법은 국회에서 큰 반대 없이 통과됐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1명 참석해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획기적 변화인 바 재계는 여러 차례 반대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사실 경제단체들의 본심은 공공기관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이 법안이 민간기업으로 확장되지 않을까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전경련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을 지켜보며 향후 민간 기업에 대한 도입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노동이사제가 민간 기업에 도입될 경우 시장경제에 큰 충격과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확대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이사 제도는 현행 사외이사 제도보다 훨씬 나은 제도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는 20년 넘게 시행해본 결과 실패작임이 명백해졌다. 경영측이 제안한 안건에 대해 이사회 통과 비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이사회는 '고무도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 본령인 견제와 감시 기능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외이사는 크게 하는 일 없이 꽤 높은 소득을 보장하면서 명예도 높이는 좋은 자리로서 인기가 있다. 유명 대학교수 중에는 사외이사를 여러 곳 맡아서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경영 측의 의사에 반해 바른말을 하는 사외이사는 연임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른말을 하느냐 자리를 보전하느냐, 이것이 사외이사의 딜레마다. 사외이사는 원산지 미국에서는 회사 내에서 경영측에 대한 견제 및 균형 작용을 훌륭히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명무실하니 '강남의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석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경영참가 중 의사결정 참가에 해당한다. 노동자의 경영참가는 보통 자본참가, 이익참가, 의사결정 참가로 나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참가 중 자본참가(예를 들어 우리사주제도), 이익참가는 여러 부문에서 꽤 오래 전부터 시행해왔으나 유독 의사결정 참가만은 경영측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자본참가나 이익참가보다는 의사결정 참가를 더 높은 단계의 경영참가로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므로 이번에 공공기관에 한정된 것이지만 노동이사 제도가 도입된 것은 한국의 경영참가 역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경영단체들의 우려와 반대에서 보듯이 한국의 경영자들은 경영참가, 특히 의사결정 참가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경영참가라는 것은 하기 나름이고, 잘만 하면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걱정은 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현행 사외이사 제도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2004년 나는 노무현대통령을 자문하는 정책기획위원장 자격으로 유럽의 노사관계를 둘러보러 노사 포함 소규모 연구단을 만들어 2주간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다. 독일의 세계적 대기업인 티센-크루프 본사를 방문해서 회장, 노조위원장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두 시간 정도 가졌는데, 거기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독일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공동결정제도라는 게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경영에 방해가 된다, 시간 낭비를 가져와 경영의 효울성을 해친다 등등 비판을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서는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1인 참석할 뿐 아니라 이사회 위에 있는 감사회에도 노동자 대표가 1/3 내지 1/2의 의석을 차지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독일은 경영참가 중 의사결정 참가 수준이 높은 나라다.

내 질문에 대해 노조위원장이 공동결정제도에 대해 우호적 발언을 한 것은 당연히 예상된 것이었지만 대기업 회장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온 전혀 뜻밖이었다. "공동결정제도는 우선 당장은 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등 단점이 있지만 노조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치므로 의사결정이 단단해지고 따라서 업무 추진력이 생기므로 길게 보면 경영측에도 조금도 손해가 없는 오히려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가진 한국의 기업가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2년 전 쯤 내가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을 때 어떤 부장이 내게 보고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했다. "기획재정부에서 공공기관 중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관 제도를 시범 운영해볼 기관이 있으면 신청하라고 하는데, 우리 재단은 안 하는 게 맞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천만에요. 좋은 거니 당장 합시다." 그래서 한국장학재단 이사회에서 노동자 대표 참관 제도를 2년 정도 시범운영해본 바 노조 측의 반응이 아주 좋았고, 기존의 일반 이사들의 반응도 좋았다. 노동이사 제도는 잘만 운영하면 회사 발전을 위한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 재계는 노동이사 제도가 민간기업으로 확대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이 글을 쓴다.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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