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방직터의 '화려한 변신'···광주의 모델 될까

입력 2024.01.08. 18:37 이삼섭 기자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⑧주거·상업·산업 융합 공간으로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방직산업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포블레노우 지역은 산업 쇠퇴로 슬럼화를 맞았지만, 22@바르셀로나 프로젝트로 인해 현재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컴팩트 시티'로 변모했다.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⑧주거·상업·산업 융합 공간으로

산업 쇠퇴로 오랜 기간 방치되며 ‘슬럼화’

2000년부터 25년간 ‘도시재개발’ 추진

첨단산업·상업·주거 복합 ‘컴팩트 시티’

전세계서 기업들 몰리고 일자리 폭포수

사업성 보장해주되 공공인프라 비용 환수

공공주택이 절반…노동자 ‘직주근접’ 실현

녹지·문화 공간 多 확보해 ‘삶의 질 ’ 높여

보행·대중교통 중심 ‘슈퍼블록’ 모범사례

"바르셀로나의 젊은 사람들은 22@바르셀로나(The 22@Barcelona)에서 살고 싶어 해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이면서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사는 것은 행운입니다."

22@바르셀로나 또는 22@혁신지구(Innovation District)로도 불리는 포블레노우(Poblenou) 지역에서 만난 올레나 씨는 집과 직장 모두 이곳에 있다고 했다. 직장을 옮기면서 둥지까지 튼 것이다. 그가 사는 집은 공공주택으로 시중 임대료의 절반 정도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지만, 이제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게 가장 좋아진 점이다.

무엇보다 22@ '슈퍼블록'(Superilles)이 적용된 보행 네트워크 구조 덕분에 녹지공간이 많고 자동차가 적어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가진 것도 이곳을 거주지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그가 일하는 직장은 옛 방직공장을 전면 리모델링한 곳으로, 독특한 공간을 선호하는 스타트업들이 다수 임대를 하고 있다.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외국계 기업이 선호하는 오피스 건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2@혁신지구는 중심지답게 교통이 편리하고 대형 쇼핑과 문화시설들은 물론, 현대적이고 세련된 아파트들이 많아 젊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다. 올레나 씨는 "바르셀로나의 많은 아파트들이 노후화되다 보니 새로 지은 집을 찾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많이 가지만 22@ 혁신지구는 일자리와 주거, 편의, 문화 시설이 한 데 있어 젊은 직장인들이 모여 든다"며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 계획이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22@ 혁신지구에는 옛 방직공장 등 건축물을 전면 리모델링해 오피스 건물로 사용하거나 현대미술관 등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거와 상업이 혼합돼 있어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활용된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버려진 방직터의 '25년짜리' 도시재생 계획

22@바르셀로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친환경·스마트시티 관점에서 도시재생을 성공시킨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도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옛 방직공장들이 대거 몰려 있던 포블레노우(Poblenou) 지역을 중심으로 민·관이 협력해 주거와 상업, 산업이 융합된 혁신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광주시는 마찬가지로 북구 임동 옛 방직공장터 공장 재개발(도시재생)을 민·관 협력으로 추진 중이다. 금호타이어 공장 이전, 하남산단이나 본촌산단 등 노후산단 대개조는 물론 문흥지구나 운남지구 등 노후 택지개발 재건축도 다가오고 있다. 22@바르셀로나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례가 광주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유다.

포블레노우 지역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섬유업 중심의 공업지대로 명성을 떨쳤던 곳이다. 하지만 19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방직 산업이 쇠퇴하고 그마저 외곽 지역(시타델)으로 이전하면서 슬럼화 현상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2001년 바르셀로나시는 2025년까지 버려진 200㏊(헥타르)에 이르는 공업지대를 지식기반산업, 미디어·ICT, 바이오 등 첨단 스마트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22@ 계획을 수립한다. 무려 '25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다.

22@프로젝트가 주목된 것은 최첨단 산업으로의 전환뿐만 아니라 양질의 주거와 문화, 교육, 레저가 공존하며 상호소통하는 '도시 커뮤니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다. 즉, 주거와 산업, 상업, 문화가 조화롭게 융합된 '컴팩트 시티'(압축 도시)로의 전환인 셈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불과 20여년만에 ICT를 비롯해 미디어, 의료공학 분야 등 1만1천500여개에 달하는 첨단 기업들이 들어서 10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10개 대학(1만5천명 이상)이 입주하면서 산·학이 어우려진 첨단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전세계에서 앞다퉈 22@바르셀로나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러 찾아오고 있다.

바르셀로나 22@혁신지구 내 전경. 현재 이 지역에는 1만1천5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1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또 혁신적 디자인을 갖춘 공공주택도 대거 보급하면서 노동자들이 저렴하게 입주해 살 수 있다. 현재 바르셀로나 내에서 가장 살고 싶어하는 '주거지'로서도 손꼽힌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공공기여로 지은 '공공주택' 노동자에게 공급

첨단기업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산업과 주거가 혼합된 '컴팩트 시티'를 표방하고 있는 도시도 많다. 그러나 무늬만 직주근접이 아닌, 실제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서 거주하는 진정한 의미의 '컴팩트 시티'는 흔치 않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기업들이 몰리는 지역은 부동산 가치가 높아 실제 근로자가 살 수 없거나 '거주 환경'으로서 좋지 않아 살고 싶지 않거나다. 결국 노동자가 주거할 수 있는 조건이 필수적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22@혁신지구는 혁신적인 방안이 시행된다. 민·관 협력으로 도시재생을 실시한 것이다. 민간에 개발권을 부여하는 대신 공공기여를 받아 그 돈으로 공공주택과 녹지 공간, 도로 등 인프라를 만드는 방식이다.

바르셀로나시는 사업자에 사유지인 공업지대를 상업과 주거가 가능토록 개발할 수 있는 개발권을 주고 또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보장했다. 대신 부지의 30%를 공공용지로 받아 직장인들이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공주택'을 대규모로 건설했다. 계획 목표인 주택 1만여호 중 절반에 달하는 4천여호를 공공주택으로 공급했다.

공공주택 또한 양적 공급을 위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지 않았다. 대신 건축 설계 공모를 통해 일반 주택과는 색다른 건축물로 만듦으로써 주민들의 만족도는 물론, 도시 미관과 경쟁력을 동시에 챙겼다.

바르셀로나시는 혁신지구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지난해 광역종합계획을 수정해 8천여호의 공공주택을 추가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22@혁신지구는 자동차 대신 보행 중심의 네트워크인 '슈퍼블록' 덕분에 넓은 녹지와 더불어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차가 없는 덕분에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쉬거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삶의 질 챙긴 주거환경…슈퍼블록 '실험' 주목

통상 기업들이 몰린 상업지구의 경우 주거지로서는 선호되지 않는다. 하지만 22@ 혁신지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한다. 비결은 '슈퍼블록'. 슈퍼블록은 만사나(블록) 9개를 묶은 뒤 보행자 중심의 도로와 녹지 공간을 확보한 정책으로 22@ 혁신지구에 선제적으로 도입됐다.

슈퍼블록 덕분에 이 지역은 자동차 이용이 최소화돼 도심 혼잡이 없다. 대신 도보와 자전거,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 체계가 도입됐고, 벤치와 놀이터, 문화예술시설이 생겼으며 가로상가가 활성화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역동적인 공간인 동시에 안전한 지역으로 우뚝 섰다.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한 것도 거주 욕구와 지역 경쟁력을 높인 한 요소다. 공업지대 내 모든 시설을 철거 후 개발하는 방식 대신 선택적으로 정비하거나 재생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예컨대, 위험한 건물은 철거하되 역사적 상징성을 갖춘 건축물에 대해서는 역사문화시설로 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기계적 방식이 아닌, 전면 리모델링을 통해 오피스로 활용하거나 민·관 파트너쉽으로 예술·문화 공간, 창업 공간 등으로 사용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시 측은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와 저렴한 주택 창출 외에도 도시의 생산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면서 "스포츠, 문화, 교육, 예술 창작, 사회·연대 경제, 녹색 경제와 관련한 용도와 활동을 확장할 계획이다. 더 포용적이고 생산적이며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혁신 기준이 되는 지구로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파우 솔라니야 바르셀로나시 국제경제진흥국장은 "정주여건에 더해 창업·기업·일자리 지원 등을 통해 산업을 키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르셀로나(22@)의 성공 이유이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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