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보러 100만명 찾는다···주거공간 넘어 도시 자산

입력 2024.01.03. 22:32 이삼섭 기자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⑦도시계획 패러다임 전환해야
1912년에 지어진 스페인 바르셀로나 내 아파트인 '까사 밀라'는 연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건축 유산이다. 당시 혁신적 도시계획이었던 '에이샴플라'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어졌으며 실력 있는 건축가의 참여와 지속가능한 설계로 현재까지 주민이 살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⑦도시계획 패러다임 전환해야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파트 건축 유산 '다수'

까사 밀라 등 혁신 설계·독특한 외관 특징적

현재도 주민 거주…'30년' 만기 국내와 차별

주거·상업·문화 조화된 도시계획 '원칙' 작용

건물·도로·사람 접점 극대화 통해 활력도 '업'

광주도 도시·건축물 품격 높이는 '시도' 불구

평면적 도시계획 방식으론 '성냥갑' 불가피

'형태기반형' 등 입체적 개발하도록 유도 必


"100년도 전에 이런 공동주택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세대를 초월해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왔던 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명작이란 건 이런 곳을 두고 말하는 거 아닐까요."

지난 10월 중순께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명 건축 유산이자 공동주택(아파트)인 '까사 밀라'(Casa Mila)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채석장)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진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도 지나가는 관광객들도 저마다 '본 적 없는' 독특한 건축물에 시선을 보내거나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었다.

물결 모양을 이루고 있는 석재로 만들어진 외관은 파도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미역 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물결 외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입구를 지나 내부에 들어가자 공중이 훤히 드러난 중정이 나왔다. 시선을 꽉 채운 둥근 아파트는 아르누보 양식의 내관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다양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지붕은 특별한 경치를 선사했다. 파도 모양을 이룬 지붕에서는 바르셀로나의 도시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바다는 물론이거니와 도시의 풍경, 또다른 유명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기록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까사 밀라'의 옥상은 다양한 조형물로 가득하면서도 바르셀로나 전경을 볼 수 있어 유명세를 떨친다. 당대 최고층에 가까웠던 건축물로 높이를 공공성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100년도 더 된 아파트 보러 연 100만명 온다

바르셀로나는 '건축의 성지'로 유명하고 그에 걸맞게 세계문화유산 건축물을 상당수 가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건 '아파트 도시' 답게 유명 건축 유산 중 상당수가 공동주택(아파트)이고 여전히 주거로서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국내 아파트는 30년만 넘으면 도시 흉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바르셀로나의 공동주택 모델 사례가 주목받는다. 단순 주거를 떠나 건축 자산으로서 도시의 품격과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서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으로 유명한 '까사 밀라'가 대표적이다.

까사 밀라는 1912년에 지어진 아파트로 지하 1층과 지상 9층, 각 층에 4개의 주택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는 상업 공간으로 구성돼 있고 2층 이상부터는 주거 층이다. 혁신적인 건축 기술과 디자인, 당시 주거지로서는 최초인 지하주차장까지 포함하는 혁신적 설계로 100년을 내다봤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조 또한 튼튼해 여전히 거주민이 있어 일부 층은 관람이 제한돼 있을 정도로 주거지로서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까사 밀라가 바르셀로나의 건축 유산이자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데는 옥상(지붕 테라스)에 있다. 방문객들은 누구나 입장료를 낸다면 다양한 작품과 조형물로 가득한 옥상에서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볼 수가 있다.

건축적 가치와 공공성을 인정받은 까사 밀라는 1962년 바르셀로나시 예술 유산(Artistic heritage of the city of Barcelona)과 198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세계적 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 평균 방문객 수로는 3천명, 한 해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100년이 넘어가는 아파트가 많은데 그 중 건축가가 참여한 혁신적 작품들은 '관광 상품'으로 도시경쟁력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명작은 '갑툭튀' 아닌 '도시계획'이 만들어

주목할만한 점은 까사 밀라가 단순히 건축가와 건축주의 아이디어와 결정으로만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어느 도시보다도 선진적인 정밀한 도시계획에 있다. 까사 밀라를 비롯한 현재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은 바르셀로나가 19세기 말부터 추진한 '에이샴플라'(Eixample·확장)라고 불리는 도시계획(도시정비) 중 하나의 결과물이다.

에이샴플라는 현대 도시계획 거장인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의 주도 아래 아직까지도 주거, 상업, 문화 지구를 조화롭게 결합한 도시계획으로 손꼽히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격자 모양의 도로 네트워크 구조 속에서 공원과 학교 등 공공공간을 배치하고 내부 정원을 갖춘 공동주택(아파트)을 채웠다. 건물과 도로, 사람 간 접점을 극대화해 도시 어느 곳이든 활력도가 극대화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에이샴플라 내 건축물들은 아르누보 양식이나 당시 까날루냐 건축 문화 등을 반영한 미학적 요소와 주거 편의성 등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디자인과 높이 등에서 강한 행정 규제를 받았다. 일관된 기조 속에서 까사 밀라를 비롯한 까사 바뜨요(Casa Batllo), 카사 아마뜨예(Casa Amatller)와 같은 명품 공동주택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물로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이 "가우디는 세르다가 그린 그림 위에 점 하나 찍은 셈이다"고 말할 정도다.

까사 밀라를 운영하는 라 페드레라(La Pedrera) 재단 측은 "까사 밀라는 미학과 기능성이라는 두가지 원칙 아래 당시 세르다에 의해 추진된 바르셀로나시의 에이샴플라 도시 계획 프로젝트와 카탈루냐 건축과 도시 양식에 따라 건설됐다"면서 "기능이나 건축, 장식 면에서 혁신적인 작품이었고 현재까지도 용도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고 여전히 주거용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샴플라는 현대에도 중요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대표적 건물이 '글로리아 타워'(옛 아그바 타워)다. 해변을 제외한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유일하게 높이 솟은 건축물(144m)은 원통형 모양과 다채로운 색상의 외관으로 바르셀로나의 스카이라인을 빛내주고 있는 걸작이다.

엄격히 도시 스카이라인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도시를 상징하는 전략적 시설로 '공공성'을 담보로 높이를 내준 것이다. 그에 맞춰 세계적 건축가인 장 누벨(Jean Nouvel)의 참여로 작품성은 물론, 도시를 전망할 수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 미디어파사드 등 사실상 공공건축에 가깝게 건축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이샴플라'(Eixample) 지구는 18세기 말부터 추진돼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에이샴플라 도시계획 위에서 현재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탄생했다. 바르셀로나 시청

◆'성냥갑 대단지' 조장하는 도시계획

최근 광주에서도 건축물의 '품격'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 주도로 창의적이고 혁신적 디자인이 적용된 건축물에 용적률이나 인허가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성냥갑 회색도시'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광주시의 경관을 개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인 셈이다.

하지만 근본적 처방을 위해서는 도시계획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광주를 비롯한 국내 도시들은 정부(국토교통부)의 도시·군기본계획수립지침에 따라 경직적으로 운용되면서 '몰개성화'가 지속됐다.

쉽게 말해 그간 도시계획은 도화지 위에 용도지구별로 선을 긋는 2차원적(평면적) 도시계획을 해오면서 각 도시가 지향하는 '미래상'을 구현할 여지가 없던 셈이다. 도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3차원적(입체적) 도시계획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대규모 도시정비 사업을 추진할 때 정비계획 수립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자체와 사업자, 전문가 등이 함께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사전공공기획제 혹은 건축물 형태·크기·거리와 블록 등 지역 현실에 기반해 세밀하게 지구단위계획을 하는 '형태기반형 계획'이 있다. 광주시는 북동 재개발사업에 사전공공기획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추진 중인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또 세종시 사례처럼 공공이 필지를 매각할 때 건축물 형태나 디자인, 보행로, 녹지 조성 등이 포함된 설계를 공모하는 식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박홍근 포유건축사무소 대표는 "그간 광주시에서 시행됐던 평면적 도시계획 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건축물(아파트)이 나올 수가 없다"면서 "공공토지를 매각할 때 설계공모를 하거나, 민간이 재개발할 때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유도(인센티브)하는 식으로 도시계획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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