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처럼 오래된 신조어가 또 있을까. 대게는 몇 달, 길어봐야 해를 넘겨 사용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신조어이건만, 유난히도 '문송합니다'는 수 십 년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이미 상당히 진척된 4차 산업혁명에 일자리 구조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상 '문송합니다'는 어쩌면 영영 사라지지 않을 신조어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로 들리는 곳이 있다. 지방이 꼭 그렇다. '문송합니다'를 넘어 '지송합니다(지역대학 출신이라 죄송합니다)'의 현실은 더욱 고달프다.
지역대학을 향한 차별과 혐오 덩어리 그 자체인 '지잡대'(지방에 잡스러운 대학)라는 말까지 대수롭지 않게 쓰이는 상황만 봐도 지역대학의 위기는 붕괴를 넘어 회생불능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공정과 자율, 희망의 지방시대를 만들겠다" 천명했던 윤석열 정권이 도리어 지역대학의 도태를 가속화 시키려 하고 있다.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관련 인재 양성으로 풀어내겠다는 대통령의 계획이 사실은 수도권 대학의 정원 확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는 대부분 수도권 대학에서 운영 중이다. 17곳 중 서울·경기가 아닌 곳은 공주대(충남)와 한국폴리텍Ⅳ대학 청주캠퍼스(충북)가 유일하다. 그나마 이 2개 학과마저도 산업체의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는 '채용조건형'이 아닌 반도체 회사 직원의 재교육 또는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형'에 불과하다.
계약학과는 기업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 내 교육과정을 직접 설립해 지원하는 맞춤식 직원교육체제다. 대표적으로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경우 삼성전자 취업 보장, 전액장학금 지원, 학업장려금 지급 등의 혜택 덕분에 경쟁률이 100대 1를 넘는 것은 예사다.
계약학과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전국의 관련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자는 이러한 정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와 기업 이전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재정 분권 방식으로 지방살리기와 균형발전 정책을 폈다면 윤석열 정부는 산업, 특히 신산업 교육을 통한 균형발전 효과를 가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 쏘아 올린 반도체 인력 육성은 단순히 사람을 키우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지방의' 첨단 인재 확충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지역대학 중심의 반도체 인재 양성이 절실하다.
이것이야 말로 지방소멸 봉착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 정책수단으로 '기회발전특구'를 강조하고 있는 윤 대통령의 구상과도 일맥상통하다.
공정과 희망의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 대통령은 '지잡대'의 아우성을 묵과하지 않아야 한다. 주현정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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