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입사하기 전 음악에 빠져 살았던 때가 있었다. 주변 선배, 음악 서적, 동영상 등을 통해 기타 연주를 배웠고, 나중에는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내게 배웠던 학생들은 학생 수만큼 특징이 다양했던 기억이 난다. 악기 연주에 관심 없고 내 이야기만 듣길 원하는 학생, 하루에 한 개씩 새로운 주법을 배워야만 귀가하는 학생, 화음과 불협화음의 이해가 떨어지는 학생, 박자는 무시한 채 연주만 하는 학생 등 손에 꼽을 수 없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밟히는 학생은 쉼표를 지키지 않던 한 초등학생이다. 늘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방긋방긋 웃으며 남들보다 일찍 와서 즐겁게 수업을 받았다. 정말 착한 아이였지만 음악적 재능은 부족한 편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싱커페이션(당김음) 주법을 이해할 동안 이 아이는 쉬운 주법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이 아이의 문제는 간단했다. 박자였다. 듣고 있으면 쉼표가 없다시피 연주했다. 많이, 빨리 연주하면 잘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의 약점은 합주에서 드러났다. 주변 악기들과 합을 맞추지 못해 점점 빨라져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따로 불러 정해진 bpm에 맞춰 연주를 시켜봤지만 여전했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큰 박자에 박수를 쳐보기도 하고 입으로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 옆에서 한음씩 짚어줄 때는 괜찮았지만, 혼자 연주할 때는 다시 속도가 들쭉날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제법 박자에 맞춰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속주에 더 이상 집착하지도 않았고, 합주 때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지었다. 달라진 모습은 자세에서도 보였다. 성실한 것은 여전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여유를 갖고 박자를 지키려는 태도가 그 아이의 연주를 소음에서 음악으로 거듭나게 했다. 예전보다 더 집중하고 있나 싶어 칭찬도 해줬다.
무엇이 이 아이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내심 뿌듯해 하고 한편으로 신기해서 내가 가르쳤던 내용들을 천천히 곱씹어 봤다. "속주는 능력 중 하나지만 느리게도 연주할 수 있을 때 그 가치는 의미 있다"고 주구장창 설명해줬던 것이 도움이 됐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말은 달랐다. 의외로 간단한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바로 "쉼표도 음악이다"는 말이었다. 그 아이 역시 자기 나름대로 음악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속주를 좋아하고 많은 소리를 내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쉼표가 싫었다고 한다. 그러다 쉼표 없이 연주하는 것은 음악이 아닌 소음이란 것을 깨달았고, 음악을 위해 쉼표를 지키게 됐다.
이 아이의 깨달음은 우리 삶과도 연결된다. 우리 인생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이들이 더 좋은 하루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건강, 시간, 인연, 추억 등 더욱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
10월에 두 차례 대체공휴일이 있다. 개천절,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봤으면 한다. 훌륭한 연주로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고 싶은가.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행복과 멀어지는 행동으로 인생을 보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볼만한 시점이다. 한경국 신문제작국 차장대우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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