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그리운 각화는 고샅길 글로 그림으로 남았다

입력 2022.05.10. 19:15 김현주 기자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광주 북구 각화마을
저수지 호수로, 전답엔 아파트
유서깊은 마을 상전벽해 대변화
담벼락 길목 길목에 옛 각화 모습
예술공간 만들어 사람 냄새 풍겨
호수가 된 각화제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광주 북구 각화마을 

수색으로 가면서 수색을 찾지 못했다는 시인의 역설처럼 나도 그런 걸까. 각화마을로 가면서 나는 각화를 찾지 못했다. 가끔 소풍 가며 보았던 예쁜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각화, 어떤 암각화라도 있을까 하고 주변을 살펴보아도 그런 각화는 없다. 각화에서 각화를 찾는 일이란 도굴당한 돌방무덤의 원형을 찾는 것만큼이나 쉽지가 않다.

 아니면 무등산의 그 어떤 신성한 영물의 뿔이 막 돋아나는 곳이 이곳 아닐까. 어떤 모퉁이 각진 곳에 있어서 각화일까. 여하간 각화(角化)마을은 없고 뜻밖의 곳에서 각화를 만났다. 각화는 고샅 골목골목에 그림으로 글로 있었다. 담벼락에 아파트 벽에 또는 길목에 널브러진 조각으로 그렇게 각화(刻畵)된 각화가 있었다.

 각화는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대한 고가도로 주탑과 아파트가 뿔처럼 날카롭게 우뚝 섰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말은 이곳에서 맞지 않는다. 오히려 아래에서 밀고 올라와 위를 변화시켜버린 곳, 상전벽해가 바로 각화다.

나는 매일 밤 수색으로 가는데 수색은 보이지 않는다./ 모래내를 지나 수색 표지판 밑으로 들어가지만/ 여기가 수색 같지는 않다./ 수색은 이곳이 아닐 것이다 수색이란 말만 있을 뿐이지 -수색으로 가며- 고형렬

각화 농산물

◆상전벽해가 된 각화마을

여하간 각화(角化)마을은 없고 뜻밖의 곳에서 각화를 만났다. 각화는 고샅 골목골목에 그림으로 글로 있었다. 담벼락에 아파트 벽에 또는 길목에 널브러진 조각으로 그렇게 각화(刻畵)된 각화가 있었다. 각화는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대한 고가도로 주탑과 아파트가 뿔처럼 날카롭게 우뚝 섰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말은 이곳에서 맞지 않는다. 오히려 아래에서 밀고 올라와 위를 변화시켜버린 곳, 상전벽해가 바로 각화다.

각화마을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시와 그림들

누구네 집에서나 비는 내린다./ 비에 젖는다./ 내 마음에도 비는 내린다./ 비에 젖는다./ 비오는 날은 / 쓸쓸한 날 아니고 / 사람이 그리운 날 / 무진장 사람이 그리운 날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최봉희

각화마을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시와 그림들

◆호수로 변한 각화지

각화마을 어귀에 새겨진 시인의 시처럼 각화도 그립고 사람도 그리운 곳이 각화다. 늙숙한 노인이 마늘밭을 매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각화동이 눈 깜짝할 사이 변했단다. 마을에 들어선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떠나고 없다며, '신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다'고 긴 한숨을 내쉰다.

"돈 아무 소양 없어, 지내놓고 봉게 맹갈맨치로 날가가븐 거시 돈이고 인생이등마…."

각화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땅 부자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느냐는 말에 노인은 한숨을 쉰다. 몇 걸음 올라가니 할아버지가 일을 하고 계신다. 따뜻해서 나왔단다. 올해 85살이라는 어르신 손에 시장에서 막 사왔다는 도라지 씨앗이 들려있다.

각화마을 느티나무와 새로 들어선 아파트

각화저수지에 산책 나온 사람이 많다. 정월 대보름에는 아랫마을 평교나 문산 마을 사람들과 자주 불놀이를 했다는 정종호(77) 할아버지는 주로 여름철 서방을 비롯한 시내 사람들이 이곳 저수지로 자주 물놀이를 왔단다. 이제 농업용수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물은 여전히 사람을 순하게 만든다며 각화제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시다. 많은 주민들이 호젓한 호수를 오가며 여러 가지 상념을 씻고 가는 곳이란다.

각화시장과 주변 아파트

◆문화가 있는 문화 마을로

각화마을은 구한말 광주군 두방면 각화리였다. 마을에 흑석점이라는 주막이 있었으며, 마을 앞 조횟들을 따라 장수논 정가배미 등 기름진 옥토가 펼쳐졌다. 마을 뒤로 큰골, 꼬시랑굴, 들싸릿재가 있고, 소까끔, 소웃등 고개가 있는 것으로 봐서 소가 물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인 형국, 그 소의 뿔 부분이 각화(角化)마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바탈봉 산자락 모서리 부분, 각(角)진 모퉁이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조용하던 마을이 1991년 2월 각화동도매시장이 개장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이들이 농산물 시장으로 대거 들어갔다. 물건을 실어 나르거나 파를 다듬고 그렇게 반농반상이 됐다. 거기다 2007년 5월 제2순환도로가 뚫리면서 각화동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급변하게 됐다. 외지인이 땅을 보러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도 시내로 빠져나갔다.

농산물시장과 아파트

그 변화의 와중에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지금은 각화동 주변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화는 물론 조각 작품이 감성을 자극한다. 비록 마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사람 냄새가 풍긴 것은 구청과 지역자치위원회의 노력 덕분이다.

그분들이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을 참여시켜 민관이 함께 하는 예술 공간을 만든 것, 곧 각화마을을 중심으로 문화동을 시와 그림으로 채워 넣는 작업은 기발한 한 수였다. 고가 주변으로 시화가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문화가 있는 문화동, 사람 살기 좋은 동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각화동에서 40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정태헌 수필가의 작품 대부분이 각화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각화동 사람들의 다양한 온정과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지금 각화동엔 광주 문인들의 꿈인 광주문학관이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

변화의 중심각화동 순환도로 입구변화의 중심각화동 순환도로 입구

◆그리운 각화마을 사람들

마갈재골 입구에는 호남전기 창설자 심만택 선생와 그의 아들이자 2대 회장 심상하 선생의 묘비가 있다. 애절하게 쓴 후손의 사부곡이 가는 길을 붙잡는다. 차남 심상우씨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중, 아웅산 사태로 짧은 생애를 마친 각화동 사람이다. 심 의원은 특히 재담이 뛰어났는데, 동료 남재희 의원이 남긴 회고담 하나를 소개한다.

호남전기 창업주 선산

내가 만난 최고의 재담꾼은 단연 심 의원이다. 함께 있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웃기고, 돌발적인 상황에도 재치 있는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내장산에서 세미나를 할 때 무등산수박을 차로 실어 왔다. 쪼개 보니 설익은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한 표정이었는데 그때 심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사무국장에게 수박을 보내라고 말했더니 잘못 듣고 호박을 보냈네요." 해서 순간을 재치 있게 웃으며 넘어갔단다. 그의 아들 심현섭 군도 아버지를 닮아 개그맨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아파트 각화마을

각화동 북쪽 자락에는 함평 이씨 제각과 함께 세종의 사랑을 받은 이긍(1389~1433)의 묘와 제각이 있다. 1405년(태종 5)과 1427년(세종 9) 두 번이나 문과에 급제한 뒤 중앙 관직을 두루 거친 그는 1433년(세종 15) 당시 명나라 사은부사로 북경에 가던 도중 병을 얻어 압록강에서 생을 마감한 선비다. 각화마을은 군왕봉의 기운을 받은 곳으로 삼국시대 돌방무덤이 두 군데나 발견된 곳일 정도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그럼에도 이제 흔적이 없는 마을이 되고 말았다.

꽃은/ 피는 게 아냐/ 그리움이/ 터진 거지/ 내 온몸의/ 피가/ 열꽃되어/ 터진 게야/ 꽃비로/ 당신 적시려/ 혼을 활활/ 태운 게야. 꽃은 피는 게 아냐-이구학

함평이씨 제각 도시

◆각화마을에서 변화를 읽다

각화저수지도 호수로, 전답은 농산물시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각화동은 변화의 중심이다. 주택 대신 고층 아파트가, 나무꾼 대신 고속도로에 차들이 씽씽 지나가고 있다. 각화에서 변화를 읽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각화마을 사람들이 남긴 사람의 향기가 이구학 시인의 시처럼 그윽하다. 또한 인근 시민들과 각화초 학생들의 삶의 향기가 시와 그림으로 잔잔하게 풍겨온다. 저수지 둑 위의 바람개비가 세차게 돌아간다. 바람개비를 돌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시간이나 변화인지 모른다. 각화동은 오늘도 아파트가 쑥쑥 올라가고 있다. 농산물시장도 교도소처럼 이전하려는지 이전 이야기가 슬슬 나온다. 각화는 지금 여전히 변신 중이다.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toamm@hanmail.net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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