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42> 광주식 도시만들기
"도시란 어린 소년과 소녀가 도시 곳곳을 거닐며, 그들이 미래에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를 보여주고 말해주는 곳이다." 세계적인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 Kahn)이 어떤 도시를 꿈꿨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우리의 고장 광주는 어떤가? 과연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후에 그들이 자라서 이곳 광주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광주다운 환경을 조직하고 있을까?
최근 광주 구도심을 비롯해 곳곳은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한창이다. 정비수법으로 채택된 것은 여지없이 '전면 철거 후 아파트 대단지 개발'이 되겠다. 이내 어떤 자치구에서는 유입인구가 늘었음을 크게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게임의 신호탄임을 모두가 눈치채고 있으리라.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재생' '마을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생활SOC의 건립과 공급에 한창이다. 하지만 재생 차원에서 지어진 시설의 상당수는 마중물 성격의 정부지원금이 끊기면 지속적인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수익구조의 안정화 또는 민간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아 시설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광주가 겪는 여러 도시적 어려움은 우리만의 이야기일까?
앞서 소개한 루이스 칸이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20세기 중반의 미국은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 무분별한 도로의 개설 및 확장, 교외개발 등으로 인해 심각한 도심 공동화 및 슬럼화 현상을 겪는다. 경제적으로도 큰 위기였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맞이한 경제적 풍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미국을 덮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선된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제시한 것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뉴딜(New Deal)'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미국은 도로, 댐, 공항 등 대규모 인프라부터 학교, 우체국, 사무소, 아파트 등 건축물까지 다양한 '시설(Institution)'을 건립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자 대도시가 됐을까? 안타깝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에 만들어진 미국 대도시의 도시구조 및 조직 그리고 도시의 시설은 여러 인종, 종교, 성별, 계층 사이 첨예한 갈등을 촉발하는 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많은 미국인이 사회와 국가를 떠받치는 '제도와 시설(Institution)'을 향해 강한 반감을 표출하며 이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다면 루이스 칸은 건축가로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루이스 칸은 국가와 도시에서 발생하는 여러 차원의 문제(모순과 갈등, 혐오와 반목으로 치닫는 사회)를 조율하기 위해 당시 대중의 생각과 달리 역설적으로 '기존 시설(Institution)의 갱신과 혁신' 그리고 '새로운 시설의 출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가 보기에 당시 미국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전문가 집단이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각종 편의시설 및 고층·고밀 아파트를 기획, 공급함으로써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안이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 이렇게 지어진 시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생겼지만, 본디 그것이 세상(또는 도시)에 출현했던 기원(Origin) 또는 시작의 정신(the Spirit of the Beginning)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의 개인 또는 집단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자폐적인 시설일 뿐이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영감, 열망, 동의를 바탕으로 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도시와 국가 그리고 수많은 도시민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그가 시설의 혁신과 갱신을 통해 강조했던 것은 '가용성(Availability)'이었다.
바로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하기 버거운 여러 현실의 어려움을 '제도와 시설'이라는 '공적인 차원'에서 조율하고 또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을 향해 '열린' 제도와 시설을 기획하고 설립하자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다시, 광주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현재 광주식 '도시 만들기'와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 그리고 '재생'의 이름으로 설립되는 여러 시설이 정말로 우려스러운 점은 이렇다.
개발시대의 관성 때문인지 우리 마음속에는 땅을 절개하고, 작은 동산을 평탄화하고, 호수와 바다를 흙으로 메꾸고, 나무를 베어버리면서 도시와 건축을 창조하는 것을 굉장히 쉽고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부터 건축에 이르는 다양한 프로젝트의 본질은 모두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묻고 듣지 않는다.
아마도 필자의 순진하고 성급한 발상이나 기우일지 모르겠으나 현재 광주에 들어서는 고층 오피스, 아파트, 오피스텔 등이 재건축 시기를 맞이하는 약 30~40년 후(지금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시점)에는 사업성 확보를 위해 더 높고, 더 거대한 고밀도 복합 대단지 건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광주의 여러 유·무형 공유재 중 또 어떤 것을 희생해야 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을까?
이는 결코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 누구든 간에 하나의 시설(주거 및 각종 편의시설)을 곧바로 기획하고 건축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공간과 장소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은지(a Way of Life)를 다섯 살 꼬맹이부터 아흔 살의 노인까지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정리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시설은 수많은 사람의 도시를 향한 그리고 시설을 향한 열망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요와 필요의 충족에 급급해 지어지는 것과는 달리,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회복 탄력성(Resiliency)'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광주를 '모두를 위한 도시'로 가꾸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첫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현대의 삶이 '다양성에 기반한 사회',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권리'가 우선하고 유행한다고 하지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가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에서는 좀처럼 서로 간에 관용, 포용, 공동체, 윤리, 사랑과 같은 다소 진부하지만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정신과 감각이 끼어들 자리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는 수많은 만남, 논쟁, 타협, 승복, 융합 등 '대화(Dialogue)에 기반한 존중'이 아니라, 일방적인 코드와 패턴이 만들어내는 '독백(Monologue)의 맹목적 공존'일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스마트시티와 같이, 각종 첨단 기술에 기반한 도시 만들기가 지니는 역설을 고민해봄 직하다.
"필리아(Philia·친애 또는 사랑)가 공동체와 국가에 그득하다면, 정의(Justice)가 필요치 않지만, 정의만을 부르짖는 곳에는 반드시 필리아가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동체와 폴리스를 놓고 필리아의 필요성에 관해 강조했던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우리의 도시 광주가 과연 '광주다운 도시'로 가꿔지고 있는지, 혹여 과거 미국 대도시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민사회의 성숙한 숙고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한상우 서울대학교 건축도시이론연구실 연구원
한상우 연구원은
연구자로서 건축과 도시에 관한 다양한 연구 그리고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소수의 도시계획가 또는 건축가가 그리는 그럴싸한 청사진보다 일상이 만들어내는 무한대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다. 마음속 한편에는 여전히 '건축과 공간에는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품고 있다. 꿈이 맛있게 영글어 현실의 꽃으로 피우도록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 국립나주박물관, 수어 영상 제공 전시실에 준비된 QR코드 안내문을 통해 전시 수어 해설 영상을 이용할 수 있다. 국립나주박물관이 무장벽(배리어 프리) 관람 환경을 조성하고 나섰다.국립나주박물관이 어린이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을 위한 전시 수어 해설 영상을 제작했다.이 영상은 관람객 누구나 어린이박물관 관람을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음성과 수어를 동시에 제공한다. 수어 해설은 청각장애인 수어해설사가 직접 설명해 수어 해설의 정확도를 높였다.영상은 '문화재를 지키는 박물관 사람들'이라는 전시 주제에 따라 고고학자, 소장품관리자, 보존과학자, 전시기획자, 교육연구사 등 박물관 학예연구사의 다양한 역할과 각 전시 공간의 체험 방법을 소개한다.영상 이용은 각 전시 공간에 배치한 QR코드를 통해 개인 휴대전화로 가능하다. 또 국립나주박물관 누리집과 유튜브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김상태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장벽 없이 누구나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전시 감상 콘텐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박물관 전시 관람에 불편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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